무소속 이용호 국회의원(임실ㆍ순창ㆍ남원 선거구)이 빨간 점퍼를 입고 윤석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미 사전에 접촉이 이뤄졌다는 뉴스가 나돌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그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윤 후보와 포옹하는 사진과 기사를 접하는 순간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분노가 치솟았다. 이용호 의원이 국민의힘에 입당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이 지역 전북을 마치 텃밭인 양 제멋대로 주무르는 지역 토호 민주당 세력에 대한 분노였다. 그들은 누가 뭐래도 이 지역은 우리 것이니 아무도 넘볼 수 없다는 듯 자리를 깔고 앉아,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이용호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선거 공약으로 당선되면 민주당에 들어가 힘을 보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당선 후에 지속적으로 민주당에 입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4월, 민주당에 정식으로 입당을 신청했지만, 지역구 민주당의 강력한 반대로 입당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 의원은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 비서실에서 근무했고 참여정부 초기에 국무총리 비서실 공보담당 비서관을 지냈다. 2004년 17대 총선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남원시ㆍ순창군 선거구에 출마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 이강래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 이강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또 다시 민주당 이강래 후보를 2,600여 표 차로 물리쳤다.
어찌보면 세 차례 총선에서 격돌한 민주당 이강래 후보와는 악연이다. 이런 선거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민주당 입당은 어려워 보였다. 솔직히 이용호 의원의 정치철학은 국민의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과 손을 잡도록 등을 떠민 건 누구일까.
해답은 민주당이다. 전북지역은 과거 이승만 독재 시절부터 야당의 텃밭이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는 동안 전북은 늘 민주당의 안방 노릇을 했다. 인물이 어떻든 민주당 명찰을 달면 선거에서 30%는 먹고 들어갔다.
2016년 한때 바람이 불어 국민의당이 크게 득세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들이 실망스러운 행보를 하는 바람에 민심은 다시 민주당에 쏠렸다. 전북 도내 대부분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민주당이 차지했고 국회의원도 이용호 의원을 빼고는 모두 민주당이 당선됐다. 한마디로 민주당 천지를 이뤘다.
지난 총선에서 이용호 후보가 당선되면 반드시 민주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공약했던 효과가 아마도 당락을 결정했으리라는 짐작을 한다. 그만큼 지역에서 민주당이 차지해 온 비중은 막강하다. 그리고 그 지지를 업고 민주당이 멋대로 지역을 쥐고 흔드는 볼썽사나운 군림을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
지역 정치판을 장악한 민주당의 횡포는 전북을 노쇠하게 하고 늘 ‘그 밥에 그 나물’로 이어져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모든 선거직을 끼리끼리 나누어 먹으며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다. 민주당 이름표만 달면 당선 가능성이 40%로 치솟는 지역 정치판이니 단체장도 늘 그 사람들이 나눠 먹기로 차지한다.
기초의원에서 출발해 광역의원으로, 기초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은 자리만 바뀔 뿐 늘 보던 그 얼굴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민주당 일색이다. 지방의회가 구성되면 지구당 위원장의 입김에 따라 의장단이 구성되고 상임위원장도 그들끼리 나눠 먹는다. 그러한 관행이 일반적이고 낯설지 않게 이어지는 게 전북의 실상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곳곳에서 추태가 목격돼 신문 지면과 인터넷을 장식한다. 부끄러운 고향 모습에 향우회 사람들은 출신 지역을 감추고 싶어 한다. 이런 지역색이 고착화하면서 인구수가 많은 경상도 지역이 뭉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무조건 민주당을 배척해야 전북이 발전한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한때 국민의당에 표를 주어 지역정서가 바뀌는가 했지만, 그들이 실망을 주는 바람에 전북은 다시 선택지 없는 민주당 텃밭이 되었다. 문제는 민주당의 썩은 물이다.
새 인물을 배격하고 저들끼리 늙어 죽을 때까지 돌아가며 자리를 차지하는 독과점 정치에 지역은 갈수록 피폐해 인구 170만 명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평생 시의원으로 늙는 사람, 이리저리 줄타기로 자리만 옮기는 그들이 물러나는 합리적 제도가 만들어져야 새 인물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진정으로 고향을 사랑한다면 이젠 그들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지역은 피폐해지고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는데, 지역이 어찌 되든 내 맘대로 쥐고 흔들기에만 재미를 붙인 그들의 전횡을 막을 방법이 없으니 걱정이다. 제발 물러나달라고 간청할 수도 없으니 이런 답답한 글을 쓰는 이유다.
국민의힘에 입당하던 날 이용호 의원은 "지난 반 년 동안 편가름의 정치, 갈라치는 정치가 더 이상 계속되서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며 "또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구태 정치,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 이것도 역시 종식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드는 정치를 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고, 윤석열 후보, 이준석 대표, 모든 분과 함께 지역 통합, 세대 통합, 다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용호 의원의 소망대로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될지, 강력한 권력으로 짓누르는 시대로 회귀할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하필이면 그와 손잡은 대선후보가 별로 능력있어 보이지 않고 배반의 장미라는 타이틀과 외골수로 살아온 사람이라는 게 걱정이다.
나라의 명운이 흐르는 대로 지켜볼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