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박성일 완주군수가 내년 6월1일 시행되는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박 군수는 입장문을 통해 “군민들께서 보시기에 아쉬운 대목도 있겠지만, 두 번의 임기 동안 저는 완주군의 미래를 위해 몸과 영혼을 다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나설 때도 중요하지만, 물러설 때가 더 중요하다. 여기까지가 완주군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완주군수로 3선에 도전할 수 있고 지방선거에 나선다면 누구보다 유력한 후보인 그가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김승수 전주 시장이 내년 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했던 맥락과 비슷한 느낌을 받지만, 일단 3선을 피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다.
지방단체장의 3선 연임 가능성을 열어둔 법의 취지는 좋은 정책과 리더십을 보인 단체장이 재선 후에도 지역민들이 그의 연임을 절실히 바라는 경우를 위한 규정이었다. 그러나 3선 연임을 정하던 당시와 오늘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당시에는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처럼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돌출하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국제 정치에서 예측불허 변화가 반복하는 시대여서 재빠른 판단과 대처가 우선해야 할 때이다. 안정보다는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는 말이다.
해묵은 사고로 이 급변하는 시대를 헤쳐나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8년간 단체장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면 이제 다른 시각에서 지역발전이 이루어지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순리이다.
요즘의 1년은 지난 시절의 50년에 비견할 만큼 빠르게 변한다. 이런 시대에 12년간 한자리에 앉아 지휘하겠다는 건 욕심이다. 일껏 한다는 게 페인트칠처럼 겉꾸미기나 과장된 선전으로 치장하는 솜씨로 3선 연임을 생각하는 건 시민을 기만하는 죄악이다.
무엇보다 3선 연임 규정을 고쳐야 하겠지만, 스스로 물러나서 새로운 시각을 가진 단체장이 일할 기회를 만드는 일도 지역발전을 위해 훌륭한 기여다. 내가 해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욕심이다. 그동안 공직에서 얻은 경험들은 버려야 할 구태이고 술수일 뿐이다.
낙후라는 부끄러운 수식어를 달고 있는 전북이 그 부끄러움을 떼어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의 인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선 7기까지 이어오는 가운데 단체장들의 경력은 대부분 공직자 출신이었다. 개발독재 시대를 거쳐온 공무원들이 단체장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고 지휘하고 있으니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시대의 경험이라는 게 ‘요령’이고 교묘한 책임회피와 ‘술수’에 불과한 헤엄치기 재주였다. 그런 재주에 능한 사람이 개발독재 시대를 견디고 고위 공무원으로 오를 수 있었다. 그들은 오랜 공무원 경험을 살려 후배 공무원들을 다스릴 줄 알았다. 적절한 통제기술로 행정을 장악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치적을 쌓는 데 주력했다.
행정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무원 출신 단체장들은 내부 잡음을 차단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말썽도 나오지 않았다. 지방의회도 교묘하게 장악하고 상생(?)하는 수완으로 재선은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긴다.
그렇게 전북은 차츰 멍들어 오늘 전국 최하위 경제력으로 ‘녹두밭 윗머리’처럼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는 박토(薄土)로 버려졌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지역발전을 앞당겼다고 큰소리치며 최고의 단체장이라고 자랑한다.
도내에 3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 3선을 노리는 단체장이 있다. 도지사를 비롯해 모 시장과 모 군수가 3선을 위해 준비하는 모양이다. 지난 8년, 이제 지겨울 때가 되었건만 앞으로 4년간 더 자리를 지키려는 모양이다.
“나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 내가 했으니 이만큼이라도 이뤘다.”라고 큰소리치는 뱃심을 부릴 때는 아니다. 지역을 위해서 이제 그만 쉬어야 한다. 더 젊고 새로운 생각이 지역을 이끌어야 한다. 묵은 생강이 맵다는 속담은 지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생강은 매운맛보다 상큼한 향과 정갈한 맛을 위해 쓴다.
묵은 경험과 생각으로는 따라가지 못할 요즘의 변화를 뭉뚱그려 무시하고 내가 수십 년간 무난하게 해왔던 경험을 최선으로 여기는 단체장의 고집이 오늘의 낙후 전북을 만들었다. 처세술과 정당한 인간관계로 출세하던 개발독재 시대의 인식은 이제 역사의 뒤란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들의 어떤 경험도 이 시대에 맞는 것은 없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놀면 뭐 하냐. 더 할 수 있으면 더 해야지’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오늘 전북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일말(一抹)의 책임을 느낀다면 사욕을 접고 불출마 선언에 동참해야 한다.
비단 3선을 생각하는 단체장뿐 아니라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는 민주당과 국회의원, 단체장과 지방의원 모두가 심각하게 반성할 때다. 역량이 부족하다면 물러서서 더 잘할 사람에게 맡기는 결단이 필요하다.
수도권에 대응하여 초광역권을 형성하는 데에서도 전북은 제외되었다. 앞으로 오래지 않아 전북은 이리저리 찢어져 흡수되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위기다. 그들의 움직임에 수수방관한 정치권의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된다.
이 격변의 시기에 한가롭게 사자성어나 뇌이며 말장난 같은 정치를 해온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공무원 경력이 대단한 스펙이라도 되는 듯 내세우며 단체장 자리를 노리는 이들도 재고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변화의 시대를 이끌 능력이다. 변화를 이해하고 갈 길을 몰라 허둥대는 이들을 안내할 수 있는 참신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공무원 경력은 구시대 단체장에 어울리던 스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