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찜 쪄 먹을 듯 훅훅 치밀던 땅바닥이 식고 바람이 서늘해졌다. 어김없이 돌아가는 계절의 변화처럼 세상은 쉼 없이 변한다. 끊임없이 폭발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우주의 시간 속에 인간은 늙어가고 다시 새로운 세대가 뒤를 잇는다.
이런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걸 느끼는 최근이다. 인간의 욕심에 아름다운 별 지구가 몸살을 앓는다. 하다, 하다 더 할 게 없는지 동물을 숙주로 삼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로 삼아 번식하면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는 우리는 집안에 갇혀 벌을 받고 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오늘의 사태를 견디며 겉만 번지르르한 인간이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지 실감했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과학이 발달한들 자연의 힘을 이길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더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리겠다고 마구 자연을 훼손했다.
인간의 잘못으로 지구 온도가 오르고 곳곳이 오염되어도 멈추지 않은 욕심, 부와 권력만 가지면 세상을 오시(傲視)할 수 있으니 오로지 그것들을 향해 직진(直進)한 결과가 오늘이다.
지금 이 나라에도 그 좋은 권력을 잡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너 죽고 나 살자’를 외치며 상대방의 아픈 약점을 찾느라 눈을 희번득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 당이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경선을 펼치는 현장에는 당(黨)도 없고 동료도 없다. 네가 쓰러져야 내가 설 수 있다는 단순 경쟁만 치열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한다. 국민이 맘에 드는 사람에게 표를 주어 일을 맡기는 선거에서 국민의 뜻이 직접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때, 권력을 쥐겠다고 나선 자들의 속임수가 등장한다. 자신의 능력을 부풀려 선전하고 남몰래 상대방의 약점을 찾는데 매달린다.
그 옛날처럼 몽둥이 들고 상대방 후보를 폭행하거나 물리적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방해하지 않을 뿐, 거친 입과 치부를 드러내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겠다는 저급한 운동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의 경선 마당은 여전히 오물과 진흙탕물을 뒤집어쓴 이전투구(泥田鬪狗)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저마다 내가 아니면 나라가 망하고 내가 나서야 상대방 후보를 누르고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다. 민주당 경선 본선이 치러지는 11일 현재, 충남북을 거쳐 대구 경북 지역까지 당원들의 투표를 마친 결과 이재명 후보가 과반의 득표를 이어가고 있다.
이낙연 후보가 27%로 2위이고 나머지는 모두 합해도 이낙연 후보의 표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구도 속에서도 후보들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낸다. 본선에서 상대 후보를 이기고 승리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큰 소리다.
자체 경선에서 한 자릿수 밑바닥을 헤매는 지지율로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뱃심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아리송하다. 또 2위 후보 지지 세력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본선에 오르지 못하면 반대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선언했다.
이런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배경에는 치열한 경쟁 관계에서 생긴 반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는 정당정치의 기본조차 없는 사람들이 지지자가 당선되면 어딘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덤볐다가 여의치 않으니 반발하는 것일 게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국민주권을 행사하고 내가 속한 사회와 나라 발전에 참여하겠다는 뜻이 아닌 개인의 이익만을 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또, 경선 투표 결과가 불리해지자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는 행동도 볼썽사납다.
특정 후보의 편을 드는 뜻이 아니라 페어플레이를 모르는 막가는 정치, 지난날 이 나라를 병들게 했던 극단정치의 단면을 보는 듯 씁쓸해서 하는 말이다. 경쟁은 경쟁이고 같은 뜻으로 뭉쳤으면 근본 태도는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국민의힘 예비 경선 마당도 퍽 소란스럽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에 여권 정치인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소위 ‘고발 사주’ 사건이 공수처까지 개입하여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거기에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박지원 국정원장을 만나 식사한 적이 있다는 제보가 나와 국정원 개입설까지 등장하여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윤 후보는 현직 검찰총장이 정권에 대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서 얼떨결에 대선 후보로 등장한 데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 행보와 부족한 식견이 점차 드러나 지지율이 떨어지고 끝내는 홍준표 후보에게 밀리는 상황도 나왔다.
여론조사라는 게 조사 방식이나 설문 내용, 조사 시행자와 결과 집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지지율 하락은 언행으로 보아 예견된 일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은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지만, 경쟁력 있는 후보가 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양당의 후보 경선을 지켜보며 아직 우리 정치는 지난 8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후진 정치 인식에 머물러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 언제까지 물어뜯기 경쟁을 이어가고 같은 정당 내에서도 경쟁을 빌미로 원수 보듯 대립하는 정치만 할 것인가?
오늘의 상황을 보면 양당 후보 가운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그 상처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갈등이 지속되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처투성이로 당선된 대통령, 그를 지지하지 않은 세력에 대한 보복, 그리고 반대 세력의 끈질긴 정권 반대 움직임이 나라 전체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선거 경험 76년이면 이제 철이 들 때도 되었다. 언제까지 후진 정치에 매몰되어 부끄러운 모습을 계속할 것인가? 모든 것이 변하고 외국에서 우리를 부러워하는 일도 많은데 정치는 아직도 유치원 수준이다.
정치하는 분네들, 제발 철 좀 들면 안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