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0일. 제19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제 어깨에는 국민 여러분들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소명감으로 무겁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에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진보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 해서 일을 맡기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약속은 무려 40여 가지였고 이뤄진다면 전무후무한 멋진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약속은 시작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야당의 강한 반발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최소한 반년 정도의 밀월 기간이 있어서 야당도 새 정부의 첫번째 내각 구성까지는 협조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박근혜를 탄핵하는 과정에서 당이 부서지며 힘을 잃었고 권력을 잃은 그들에겐 증오심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내각 구성을 위한 청문회 마당은 살벌한 성토장이었다. 결국, 청문 대상자들은 헐뜯기 청문회를 견디지 못했다.
첫 단추부터 틀어진 야당과의 관계로 ‘국정 운영의 동반자’는 물 건너갔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야당의 찰거머리 대응에 문재인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물론 현실과 동떨어진 아마추어적 정책 또한 한 몫을 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약속대로 국가정보원의 기구를 축소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정치권에 대한 견제 수단이 없어졌다. 당연히 야당의 협조를 받지 못했다. 대화정치 또한 사라졌다. 여기에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검찰, 보수언론, 수구 세력과의 대립각은 더욱 심화됐다.
그러다가 2019년 7월에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에 대한 야당의 반대는 치열했다. 검사시절 수사와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은 물론 배우자 및 장모와 관련된 각종 의혹과 이명박, 박근혜 구속 등을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여론도, 언론도 윤석열의 검찰총장 기용을 말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그를 끝내 기용했다. 문 대통령의 무리수는 엄청난 결과를 몰고 왔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오로지 ‘조직에만 충성한다’는 윤 총장의 행보는 검찰개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려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그는 정면으로 도전했다. 검찰개혁 또한 물 건너갔다. 조국 또한 자신은 물론 가정마저 풍비박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어 추미애 전 의원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으나 검찰의 저항은 추미애 장관마저 낙마하게 했다.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이 이끄는 검찰과의 싸움에서 완패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취임사에서 내놨던 휘황찬란한 약속을 거의 지키지 못했다. 한낱 그럴싸한 수사(修辭)에 그친 약속들은 이제 역사의 그늘에 아무런 가치 없는 허사(虛辭)로 치부되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임명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인물 윤석열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야당의 대선 후보가 돼 문 대통령을 향해 날 선 비난을 퍼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명을 반대했던 야당이, 최고의 적임자라며 비호에 나섰던 여당이, 이젠 각각 다른 입장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선후보로 비난하거나 지지하고 있다. 이 또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로 상식 밖이다.
지난 10일 법무부는 삼성그룹의 총수 이재용 씨를 가석방하기로 했다. 명분은 반도체 등 경제살리기와 코로나19 백신 확보였다. 누가 봐도 특혜라 할 수 있는 일을 손바닥 뒤집듯 처리하는 솜씨가 “정권 말기 들어 경지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뿐인가. 회전문 인사를 비롯해 갈팡질팡 부동산 정책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정책이 없다. 새만금을 희망의 땅으로 만들어 전북 도민에게 빚을 갚겠다고 했던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특히 지방의 균등 발전 공약은 눈은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 한다면서 최저임금만 급격하게 올리는 바람에 그나마 먹고살던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의 일터를 한순간에 앗아가는 현실을 재임 기간 내내 체감하면서도 올해 또 올렸다. 문자 그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같아, 수고의 말씀을 전하고 싶을 정도다.
수도권과 지방은 돈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서울에서 100만 원은 쉽게 통용되고 있지만 낙후된 전북에서는 아직도 큰돈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수도권과 차등을 둔 정책을 썼더라면 인구 분산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지방 문제 해결 없이는 수도권의 부동산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지지층의 충성도는 대단하다. 왜일까? 굳이 인정하자면 그가 아마추어에 가까운 생각으로 4년을 이끌어 오는 동안 국민이 그의 진심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떤 대통령보다 사욕을 챙기는 행위를 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야당과 수구 언론의 공격, 검찰과 사법부의 협조를 받지 못하는 정권, 심지어 검찰의 압수수색을 저항 없이 받은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간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실감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 델타 변이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이 힘든 상황이 언제 끝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무엇 하나 잘한 일이 없는 문재인 정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지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마음이 스스로 생각해도 궁금하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왔던 약속들은 그저 우리가 바라는 소망으로만 남을 수는 없다. 누군가 그 소망들을 현실로 이루어주는 이가 나오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