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태양 빛을 가려 세상이 온통 누렇게 보였다. 8일 군산에서는 일시적으로 먼지 농도가 1,000㎍/㎥까지 치솟았고, 익산지역에서도 850㎍/㎥, 전주시도 600㎍/㎥를 넘어섰다. 매캐한 먼지 냄새가 목을 간질이는 어버이날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속에 가족 모임도 드문드문했고 예년처럼 카네이션도 별로 볼 수 없었다. 대략 봉투만 오가고 가정에서 간단히 어버이날 의미를 새기는 주말이 되었다. 어쩌면 내년에 코로나 거리두기가 풀려도 이러한 약식 가정의 달 행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과거처럼 서로 기대고 의지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걸 깨달은 듯 보인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소수 집단 단위인 핵가족 형태의 삶에 점차 익숙해가는 불행한 시대로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인간은 서로 의지하고 무리를 이루어 공동의 이익과 행복을 구하는 집단이었는데, 나 혼자, 또는 우리 가족끼리만도 얼마든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서로 대면하지 않고 외출도 줄이면서 사는 요즘의 일상에서 외로움과 북적거리며 살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게 정상일 터이지만, 사람들은 벌써 이런 생활에 적응하며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국회 미래연구원이 작년 11월~12월 사이에 전국의 15세 이상 1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행복감’을 조사했다고 한다. 요즘의 맨날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1천 명대 여론조사가 아니라 그 14배에 달하는 사람이 응답한 조사이니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야지만 어딘지 이상하다.
행복한 전북 사람들(?)
국회 미래연구원은 한국인이 코로나 상황에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 조사에서 한국인은 10점 만점에 평균 7.83점을 보였다고 한다. 더구나 전라북도 주민들은 전라남도 8.22의 바로 아래 8.21점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두 번째로 행복하다는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반면, 제주도는 6.51점으로 가장 낮았고 다음 경북이 7.16점이었다고 한다. 경북과 제주는 행복과 관련한 모든 지표에서 최하위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8년 기준 가구별 경상소득은 경북이 5,054만원, 제주가 5,124만원으로 전남 4,777만원, 전북 4,860만원 보다 높은데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였다.
소득이 많아서 행복을 느끼는 건 아닌 모양이다. 왜 소득수준이 최하위인 전남 사람들이 가장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전북도 강원과 충북 다음으로 가구 소득이 적었다. 소득과 행복감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조사였다.
제주나 경북은 광역시에 뒤지지 않는 소득수준에도 행복 지수가 낮게 나타난 것 보면 행복을 느끼는 건 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더 많은 돈이 있어야 하고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욕심이 그들의 마음을 불만으로 몰고 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 지역은 소득이나 재산 격차가 심해서 주민 가운데 일부가 번쩍거리며 사는 데 대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일일 수도 있다. 가진 자들이 으스대는 지역의 주민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풀어 볼 수 있겠다.
전남과 전북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8.22와 8.21을 나타낸 까닭은 무엇일까? 진정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은 사람들이 높은 지수를 나타낸 까닭이 궁금하다. 단체장 평가에서도 너그러운 사람들이 전북 사람인 점을 미루어 보면 가난해도 그럭저럭 어우렁더우렁 사는 게 행복이려니 생각하는 너그러운 마음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높아진 행복 지수
조사자들은 일반 여론조사처럼 전화 응답 조사가 아닌 직접 면담을 통해 전반적 행복감, 삶의 의미, 성취감, 인생 결정의 자유, 현재 자신의 계층 사다리 위치, 5년 전과 후의 삶의 만족도 였다고 한다. 직접 면담 조사이므로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면전에서 불행하다고 말하기 싫어하는 전라도 사람들의 기질이 이번 조사에서 상당 부분 반영된 게 아닌가 짐작한다.
아무튼 이번 조사는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유엔 행복 보고서에 나타난 행복 지수 5.895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유엔의 조사는 전화 응답 조사였던데 비해 이번 국회미래연구원 조사는 지역별로 대표성 있는 표본을 추출하여 면접 설문을 진행했으므로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응답자의 85%가 6점 이상이라고 생각했다는 건, 설문 방식 등에서 낮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 게 아닌가는 의심도 든다. 조사에서 설문의 형식이나 문구가 응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임시 일용근로자가 7.69점, 직장내 차별경험자가 7.40점, 개인소득 200만원 미만 7.48점, 중졸 이하 7.37점, 건강상태가 나쁜 사람 7.03점, 만성질환 보유자 7.35점, 장애인 7.65점을 보인 걸 보면 설문 내용이 높은 점수를 유도하는 요소가 있었음을 의심하게 한다.
몸이 아픈 사람이 70%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유엔 행복 보고서에서 6점을 넘지 못한 점수가 갑자기 최저 6점으로 높아진 까닭을 모르겠다. 전화 응답이든 면접이든 갑작스럽게 달라질 수는 없지 않은가?
뭐 그저 행복하다는 데 시시콜콜 가타부타할 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주체가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미래연구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이 근거로 삼을 연구가 인위적이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변조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행복처럼 좋은 단어가 있으랴. 미래연구원의 조사처럼 코로나 속에서도 모두 행복을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