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에서 전해 오는 생명의 화음
위층에서 전해 오는 생명의 화음
  • 전주일보
  • 승인 2020.12.17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 금 종 / 수필가
백 금 종 / 수필가

이사 온 건 지난 2월 하순이었다. 며칠간 계속된 추위가 맹수의 발톱처럼 매섭게 도사리고 있어 이사하는 날 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다행스럽게 날씨가 쾌청하고 기온도 포근하여 아무 걱정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나자 땅거미가 짙어졌다. 이사하는데 여러 가지로 힘을 쓰고 신경을 집중한 터라 피로가 밀려왔다. 고단했던 하루를 대충 닫으며 거실에서 휴식하고 있을 때였다. 초인종이 ‘땡강땡강’ 울렸다. 아니 이사한다고 자식들한테도 연락하지 않았는데 ‘누구일까?’ 하면서 문을 열어 보았다.

낯선 아주머니가 예닐곱 살과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어찌 오셨는지 물으니 윗집에 사는 가족이라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집안에서 많이 뛰고 소란스러운 편이라며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아이들에게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라 했다. 꼬마들이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나도 “안녕” 하고 화답했다.

나는 문득 60여 년 전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모두 3남매를 길렀는데 셋이서 어우러져 뛰면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 술래잡기하며 이방 저방으로 몰고 다니고, 소파 위에서는 방방 놀이한답시고 뛰었다. 큰애가 뛰면 나머지 동생 둘은 덩달아서 뛰었다. 낮에만 뛰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뛰었다. 심지어 늦은 밤에 뛸 때는 아랫집 식구들 잠자는데 눈에 먼지가 들어간다고 타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성장의 진통이었음을 한참 지난 후에야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이야 뛰는 것이 일이지요.” 염려 말고 올라가시라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주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 그것은 하얀 상자에 담긴 빛고운 딸기였다. 웬 이런 것을 가져 왔냐며 “아이들한테나 주라.” 며 사양했다. 그래도 작은 성의이니 받아주시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하는 수 없이 받았다. 가지런히 담긴 딸기가 두 아이처럼 야물고 예뻐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꼬마들이 무던히나 뛰었다. 쿵쾅쿵쾅 뛰는 소리는 물론 드르륵드르륵 미는 소리, 바퀴 달린 장난감을 굴리는 소리,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 웃고 우는 소리가 어우러져 거의 종일토록 이어졌다. 신경이 곤두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하랴? 참는 수밖에... 처음 만날 때 한 말도 있고, 내 손자들이라 생각하며 인내심을 발휘해야지.

외출할 때나 돌아올 때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그 꼬마 친구들을 만난다. 그럴 때면 미안한지 겸연쩍게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는 “오, 너희들이 주인공들이지.” 하고 맞인사를 한다. 사실 주인공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소음을 일으키는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장차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되라는 나의 바람도 담겨있다. 나의 의미 있는 말뜻을 못 알아들은 녀석들은 무표정이지만 그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과 기대에 찬 마음이 교차하는 듯 얼굴에 분홍빛 물이 든다.

그러면서 “미안해요.”를 반복한다. 나도 웃으면서 “괜찮아요.”를 연발한다. 서로 이해하니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다. 만나서 인사하며 대화하는 횟수가 더할수록 덧정이 쌓여갔다. 이 꼬마들도 나에게 친근감을 보인다. 이제는 허물없이 “할아버지” 하고 부르기도 하고 “안녕하세요?” 하고 스스로 인사도 한다.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때는 손도 잡아준다. 때로는 뒤꽁무니로 와서 장난도 친다. 그럴 때면 이 꼬마들이 내 손자처럼 귀여운 생각이 든다. 아니 이 꼬마들은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40여 년 가까이 도회 생활을 하며 이처럼 스스럼없이 지낸 옆집이나 이웃이 없었다. 만나면 체면상 인사 정도 하며 살았는데 이제야 진정 친구다운 이웃을 만났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꼬마 친구라니…얼마나 신선한 관계인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마다 혹시 만나려나, 보고픈 마음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안내방송을 하는 때가 있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입주민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그 첫째가 층간 소음 문제요 둘째는 흡연문제이며 세 번째는 주차 문제이다. 모두가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데서 야기되는 문제들이다. 흡연이나 주차 문제는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층간 소음은 대개 어린아이들이 내는 소리이므로 부모의 의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어린아이에게 뛰지 말라고 해 보았자, 쇠귀에 정 읽기이다. 아이들은 본시 눈 뜨면 일어서고, 일어서면 뛰는 게 정상이다.

나는 젊은 시절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나선 적이 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 소리는 내 안의 스산함을 잠재워주었다. 연잎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침잠하는 자아를 일깨워주었다. 숲속을 청아하게 스쳐 가는 솔바람 소리에 내 영혼을 빼앗긴 적이 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두게 되면서부터 아름다운 소리는 자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생활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노란 부리를 쩍쩍 벌리고 받아먹으려 짹짹거리는 아기 새소리에는 생존의 치열함을 느끼게 하고, 모이를 찾아놓고 병아리를 부르는 어미 닭의 꼬곡꼭 소리에는 모성애의 자애로움이 묻어난다. 뿐이던가? 엄마 젖을 꼴깍꼴깍 넘기는 아기의 젖먹는 소리, 깔깔깔 웃는 어린 아기의 순진한 웃음소리, 놀이터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의 해 맑은소리, 거기에 더하여 씩씩하게 자라면서 쿵쾅쿵쾅 내는 소리도 생명의 온기를 느끼는 아름다운 소리가 아닐까?

아이들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몸짓 하나하나로 성장해가는 생명체이다. 살아갈 내일이 무궁으로 펼쳐진 그들이기에 오늘의 몸짓은 어쩌면 당연하려니 싶다. 조금은 소란하지만, 성장의 박동수가 느껴지는 그 생명의 화음을 누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