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갔다. 아니 그놈이 가더니 더 센 놈이 왔다. 사십 년 가까이 매달 찾아와 며칠씩 동고동락했건만, 갈 때는 냉정하게 가버렸다. 같이 지낼 때는 징글징글하게 잊지 않고 찾아와서 귀찮아할 때가 많았는데 막상 떠나고 나니 내게서 뭔가 빠져 나간 듯 시원섭섭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한바탕 따져보고 싶다. 이왕에 갈 거면 조용히 흔적 없이 떠날 것이지 내가 아무리 귀찮아했기로서니 뒤끝장렬하게 저보다 더 기분 나쁘고 찰거머리 같은 센 놈을 데려다 놓고 가면 어쩌자는 거냐고.
새로 나타난 놈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귀찮게 할 뿐만 아니라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게 한다. 기다린 적도 없고 반기지도 않았거늘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내 안에 한자리 차지하고 떡하니 버티고 앉아 아주 주인행세까지 한다. 바삐 사느라 어지간한 기척은 무시하다 보니 시나브로 스며들어 이런 불량한 놈이 오는지, 그놈이 가는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가 된통 당하는 중이다.
어느 날은 손가락, 발가락이 아파서 꼼짝 못 하고 어떤 날은 무릎, 팔목, 어깨, 온통 관절을 콕콕 후벼 파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자야할 잠을 안 재우고 밤새도록 초원에서 풀 뜯는 양을 수만 마리 헤아리게 한다. 어느 날은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무력감이 들었다가 어떤 날은 세상이 잿빛 하늘처럼 음산해 보이고 또 어떤 날은 절제할 수 없이 화가 치밀어 날 당황하게 한다.
그럴 때마다 왜 사는지 의미를 찾으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은 오목가슴 쪽에서 열기가 훅 올라와 감정조절이 안 되고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줄줄 나기도 하는가 하면, 장소 불문하고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붉어져 당황하게 만든다. 어디 그뿐이랴. 살은 왜 그리 쉽게 찌는지. 물만 먹어도 살이 오르는 것 같다. 특히 중부지방으로 집중되어 남편은 왜 배에 타이어를 걸치고 있냐며 놀리기 일쑤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건 이러다가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싶도록 심하다. 예전에는 자동차 번호판만 봐도 이웃 누구네 차인지 다 알 정도였고 자주 쓰는 전화번호는 다 외우고 있었거늘, 지금은 아무리 머릿속에 넣으려고 해도 그놈이 훼방을 놓는지 도대체 헷갈려 기억해낼 재간이 없다. 즐겨 쓰던 전화번호마저 가물가물할 때가 있어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글을 쓰다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여기저기를 걸어보고 스마트 폰을 뒤지다가 낭패를 본 적은 부지기수다. 이쯤 되면 새로 찾아온 놈은 내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센 놈 아닌가 싶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돋보기가 필요할 때부터가 중년이요, 무릎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갱년기라고 농담 삼아 말할 때는 남의 이야기 하듯 했다. 헌데 말이 씨가 된 듯 나는 몇 년 전부터 다 초점 안경을 쓰게 되었고 세월이 내 안에 들어가 내 뼈에서 땅 따먹기를 하는지 걸을 때마다 무릎에서 소리가 난다. 생각해보면 이미 몸은 그 시기를 지나고 있음을 신호로 알렸건만,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일삼다가 교통경찰에 딱 걸린 셈이다. 운동도 뒷전이요, 먹고 싶다고 다 먹으며 몸 관리에 소홀한 틈새를 노리고 이놈은 아주 쉽게 내 몸을 점령해버렸다.
퇴근길에 아파트 마당 모정에 어르신들이 계시기에 인사를 드렸더니 한 어르신이 물으신다.
“이뿐 각시 올해 몇 살이지?”
그분들은 나를 25년째 이뿐 각시라 부르신다. 내 나이 서른 살쯤부터 이웃으로 살았으니 그분들한테는 내가 아직 새댁으로 보이시는가 보다.
“쉰여섯 살이요”
대답하니 좋을 때라 하시며 당신들이 그 나이만 됐으면 뛰어다니겠다고 하신다. 나는 마흔 살만 돼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지금도 후에 생각하면 좋을 때가 된다는 걸 정작 모르고 살았다.
‘그렇구나! 지금이라는 시기가 누군가에겐 늘 좋을 때인 것을’, 어른들로부터 해답을 얻었다. 그렇다면 날마다 긍정적으로 그놈과 타협하며 잘 지내보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오십 년 이상 써먹은 이 몸뚱이가 어찌 아무런 대가 없이 인생이 곰삭는 성숙기에 접어드는 계단을 쉽게 오를 수 있겠는가?
내 나이 사십 살쯤 내 인생은 지금 맛있게 익어가는 중이며 오십 대가 되면 알맞게 곰삭아 정말로 맛있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수필도 썼건만, 50대에 이렇게 갱년기란 놈한테 발목 잡혀있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갱년기(更年期)는 말 그대로 노년기로 가기 위한 관문일 뿐이다. 갱년기의 ‘更(갱)’은 ‘고치다’, ‘개선하다’, ‘다시’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워지다’라는 뜻도 품고 있다. 그러니 인생의 황금기에 잠시 한숨 돌리며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할 제2의 사춘기를 다시 맞았다고 여기면 못 이길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러니 100세 시대에 고작 56년을 살고 인생이 끝날 것처럼 호들갑떨 일 또한 아니리라.
매달 어김없이 찾아오다가 냉정하게 떠난 놈과도 40년 가까이 그럭저럭 잘 지냈거늘, 다시 만난 이놈이라고 그리 못 지낼 이유는 없다. 내 몸에 찾아오는 그놈이 그놈 아니겠는가? 그러니 적당히 타협도 해보고 한판 붙을 때는 오지게 싸워가며 슬기로운 갱년기 생활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