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익어가는 어느 날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파란 물결이 벌판으로 달리는 때였다. 지인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이 전송되어왔다. 열어보니 작은 풀꽃 사진이다. 산책하다 좁쌀만 한 게 아주 신기해서 찍어 보낸다는 사연과 함께.
호기심에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별 모양의 꽃받침 팔 베게 속에 5쌍의 하얀 꽃잎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소곳이 피어 있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꽃잎처럼 단아한 하얀 꽃이다. 꽃잎 안쪽에는 2개의 수술, 4개의 암술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이 다정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 밑으로 뭉뚝하게 생긴 잎에는 작은 솜털이 무수히 나 있다. 작은 꽃이기에 귀엽고 소박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목련처럼 요염하지도 않고.
이름하여 ‘별꽃’이라는 풀꽃이다. 별꽃은 밤하늘 반짝이는 별처럼 작아 보이는 꽃이다. 하도 작아서 풀꽃의 귀염둥이라고도 한다. 작은 꽃들이 땅바닥에 붙어서 피어나니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무심코 그냥 지나치기 쉬운 꽃이다. 서서 보면 잘 보이지 않고 낮은 자세로 보아야 겨우 볼 수 있다. 다만 봄바람이 살랑 불어오면 아른아른 흔들거리며 벌 나비를 유혹하는 것은 여느 꽃이나 마찬가지 싶다.
질긴 잡초 속에서 틈을 비집고 생명을 내린 꽃, 꾸밈없이 소박하게 피어 있는 이 작은 풀꽃. 소박하게 단장하고 부끄러워 살며시 얼굴을 돌리는 내 누이 같은 꽃. 작은 꽃이지만 꽃으로서 갖출 것은 모두 갖춘 무결점 결정체다. 신의 섬세한 배려의 결과라고나 할까? 아니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진화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꽃이 작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요란스럽고 화려하게 피는 꽃보다 풀 섶 한쪽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작은 풀꽃들이 소박하고 순수해서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작아서 더 아름다운 것이 지천으로 많지 않던가?
일찍이 A.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고 했다. 그는 비록 경제적인 면에서 갈파한 명제이지만 자연에 적용해도 어긋나는 말은 아닌 듯싶다. 자연현상이나 우리 주변을 보아도 작고 오밀조밀해서 아름다운 것이 부지기수로 많다. 아기, 강아지, 병아리, 씨앗, 새싹, 초승달은 물론 현대 기술의 총아인 나노기술은 그 미세함으로 가슴 설레도록 아름답기도, 유익하기도 한 존재들이다.
나는 여태 탐스럽고 향기로운 꽃에만 열광했다. 봄에 화사하게 피는 벚꽃이나 목련에 마음을 빼앗기고, 초여름엔 장미꽃 그 향기에 취했다. 가을이면 국화꽃의 고결한 자태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찾곤 했다. 각 고장에서 열리는 꽃 축제에서도 국화, 장미, 튜립 등 화려하거나 향기로운 꽃 축제에 관심이 많았다. 내실보다 외형을 더 보는, 알차지 못하고 겉멋에 혹하는 나의 성정이 아닌가 한다.
오늘 사진으로 보내준 그 풀꽃을 보면서 그간 작은 꽃이라고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즉시 현장에 가서 풀꽃을 찾아보고 그 모습을 익혀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러기 전에 우선 손쉬운 방편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로 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많은 풀꽃들이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평소 들어서 친근한 민들레, 제비꽃, 별꽃, 질경이, 꽃 마리, 봄 까치 꽃, 애기똥풀, 노루귀 등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생소한 노루오줌, 쥐오줌풀, 애기제비. 며느리제비, 며느리밥풀, 괭이눈, 닭의장풀 등등 여러 종류의 풀꽃들이 인터넷 속에서도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 작은 풀꽃도 그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피눈물 나는 시련을 이겨냈을 터이다. 추위를 이겨내고 매서운 비바람에 견디어야 하고, 무심한 인간들의 발길을 피해야 했다. 심지어는 먹이로 넘보던 짐승들의 거친 숨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긴날을 기다린 후에 오롯이 한 송이 꽃으로 피었으려니 싶다. 그러기에 그 작은 풀꽃이 더없이 대견하고 경이롭게 보였다.
어쩌다 한 사람이라도 지나가다 바라보아 주기를 고대했을 것이고, 벌 나비가 날아와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캄캄한 밤 외로움에 떨 때 보름달이 둥실 떠올라 밤새도록 이야기 동무가 되어 주었기에 힘이 되었을 터이다. 얄궂은 봄바람이 불어와 부푼 가슴을 흔들어 놓곤 냉정하게 산 너머로 달아날 때는 얼마나 서운했을지? 만약 꽃에도 입이 있다면 그 절박했던 사연들을 줄줄이 풀어놓았을 테다.
별꽃이 작다는 것은 겸손하고 욕심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오만하지 않겠다는 마음도 있지 싶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줄을 타고 오르지도 않고, 가시가 있어서 다른 꽃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다만 땅바닥에 붙어서 수줍게 핀다.
작은 별꽃을 보려는 자는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고개를 들고 높은 곳을 바라보면 별꽃 같은 작은 풀꽃은 볼 수 없다. 별꽃은 낮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위해 피는 꽃인지도 모른다. 보는 이가 겸손한 마음과 낮은 자세를 가질 때 이 별꽃도 고마운 마음으로 보는 이를 맞이하여 줄 것이다.
풀꽃이 단지 작다는 이유로 알아보지 못한 것은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도외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자연의 위대한 법칙에서 보면 꽃들이 조금 크거나 작거나 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 크다고 작은 꽃에 비해 우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오묘한 진리를 품은 것은 더더욱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며 큰소리치고 사는 인간 역시 대 우주의 섭리에서 보면 여느 풀꽃처럼 작은 존재이다. 그 작은 한 개체에 지나지 않은 인간. 즉 나는 얼마만 한 존재일까? 작은 별꽃보다 조금 큰 존재일까? 크고 작음을 떠나 다 같이 자연의 일부가 아닐까? 사진 속의 작은 별꽃이 내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