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름의 문턱을 알리는 절기로 소만(小滿)이다. 아침 날씨는 약간 쌀쌀 했으나 한낮은 초여름처럼 기온이 올랐다. 하지만, 바람이 간간이 불고 가로수의 짙은 신록이 무더위를 날려 보내는 듯해 한결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교외 용진면에 자리한 ㅊ어린이 집에서 딸이 일하고 있는데, 몸이 불편하대서 내 차로 함께 나오던 참이다. 나지막한 산 고개를 내려오는데, 시멘트 포장로 길섶에 아주 작은 참새처럼 보이는 새끼 새 예닐곱 마리가 앙증맞게 줄줄이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하도 귀엽고 신기해 차를 멈추고 보았다. 그러자 풀 섶에서 어미가 나와서 새끼들을 몰아대니까 병아리 달음박질치듯 달아났다. 어미를 보니 메추리였다.
내가 차를 움직이자 어미는 손 쌀같이 풀 섶으로 몸을 숨기면서 새끼들에게 뭐라고 명령했는지 몰라도 일제히 달아나는 걸 멈추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치 군대에서 실시하는 각개전투를 연상케 했다. 말하자면 어미메추리는 엄폐(掩蔽)를 했고 새끼들은 납작 엎드린 채 은폐(隱蔽) 동작을 취한 것이다. 메추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매 공격을 피하는 경계방법이 군사병법으로 옮겨갔지 싶다. 자연의 섭리가 오묘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순간, 빨리 비켜주는 게 메추리에게 도움이 되지 싶어 서둘러 그 자리에서 떠나왔다. 구불구불한 논 다랑 길을 돌아내려오면서 새끼메추리의 귀여움이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렸다. 살다가 그렇게 작은 새끼메추리를 본 건 처음이다. 산토끼를 잡는다고 산기슭을 헤매거나, 논두렁을 지나다 메추리와 마주친 적이 있는데 최소한 병아리 정도의 크기는 됐었다. 곰곰 생각하니 메추리알과 계란의 차이지 싶었다.
메추리는 무성한 숲이 아닌 억새 숲이나 가시나무 넝쿨 속에 둥지를 틀고 산다. 메추리는 언뜻 보면 꽁지 빠진 닭과 비슷하나 몸집이 아주 작다. 색깔은 자연 보호색으로 나무색과 흡사한 흙 갈색이다. 왜냐면 숲 위로는 항상 배고픈 매가 부리를 갈면서 주린 배를 채우려 하늘을 선회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메추리가 숨어있는 덤불 속까지는 매의 눈초리도 미치지 못한다. 메추리가 비록 둔하게 생겼고 하찮게 보여도 조금 전에 보았던 것처럼 그렇게 매의 공습을 피함으로서 생명을 이어가지 싶다.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각기 제 나름의 보호재능을 지녔다고 보겠다.
딸과 H 병원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문득 60여 년 저쪽의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전주에 사시는 숙부 댁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할머니와 한방을 썼는데, 그때 할머니 방엔 네 폭짜리 병풍 하나가 있었다.
하도 오래전의 일이지만 할머니가 병풍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던 내용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부터 첫째 폭은 봄으로 까치 한 쌍이, 둘째 폭은 여름으로 원앙 한 쌍이, 셋째 폭은 가을로 메추리 한 쌍이, 넷째 폭은 겨울로 두루미 한 쌍이 다정하게 노는 수묵화에 화제(畫題)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림 속의 까치, 원앙, 두루미는 알겠는데 메추리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시골서 메추리를 보았음에도 병풍 속의 그림이 닭인가? 비둘기인가? 꿩 새끼인가를 구분 못해서 할머니께 여쭤 보았다. 그랬더니 메추리라고 알려주시면서 그림에 보이는 새들 모두가 금슬이 좋고 신의를 지키며 해로(偕老) 한다고 하셨다. 특히 메추리는 다산(多産)도 상징하며 집안을 번성하는 의미라고 강조하시던 말씀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훗날, 이순(耳順)을 앞두고 서예를 배우던 때다. 친구 부친이자 서예가이신 월담(月潭) 선생님께 화제(畫題)로 쓰인 ‘안빈낙도(安貧樂道)’에 대해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안빈낙도는 메추리 그림의 화제로 많이 쓰이는 글귀라고 하셨다. 메추리는 원래 성질이 순박하고 얕은 풀밭에 숨어 사는데 일정한 거처는 없어도 정한 짝이 있으며, 어디서 살든 만족해하며 산다고 했다. 또한, 가다가 작은 풀을 만나면 밟지 않고 돌아서 가는 등 덕성을 지녔으며, 꽁지는 없어도 깃털에 무늬가 있어 마치 누더기 옷을 입은 것 같아 청빈을 상징하는 의미로 메추리를 빗대어 많이 쓰는 거라고 알려 주셨다.
메추리 그림에 조(粟) 이삭 아래서 낟알을 주워 먹는 그림이 많이 나오는 것은 가을의 풍요로움과 결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아주 작은 조 낱알 하나가 수백 개의 열매를 맺기에 다산(多産)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부연도 하셨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아가면서 작은 것에 만족하며, 청빈하게 살면서도 인생을 즐길 줄 알고, 또한 세상 이치를 깨닫는 게 군자의 도리인데, 바로 ‘안빈낙도’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가르쳐 주시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어느새 내 나이 팔십 문턱에 이르렀다. 한데, 아직도 이런저런 인연을 핑계로 여기저기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데, 친구 K는 이제 좀 다 내려놓으라고 성화다. 올해 정초에 ‘스카우트 전북연맹’의 두 개 직책과 내가 다니는 성당의 ‘노인친목회’ 회장 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아직도 네 개나 남아 있는데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내년 봄엔 두 개를 정리 할 생각이다. 팔십을 넘기기 전 모두 정리하고서 이제는 자유롭고 초연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오늘 뜻밖에 메추리 행군을 만나 옛 시절로 돌아가서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말씀과 월담 선생님의 가르침이 떠올라 어떻게 사는 게 군자의 도리며 넉넉한 삶인가를 다시 한 번 깨우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안빈낙도(安貧樂道), 단 네 글자가 지닌 의미는 생각하는 범위와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들의 무한한 욕심으로 바이러스까지 불러들여 삶이 온통 무너진 오늘이다. 안빈낙도는 아니어도 이 혼란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내 늙바탕이 그저 평온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