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고향 마을에 배꼽쟁이가 있었다.
늘 배꼽을 드러내고 다녀 배꼽이 훤히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배꼽쟁이라고 불렀다. 그의 배꼽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커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골이 깊고 넓어 아주 튼실한 배꼽이었다.
그는 겨울 한철을 제외하고는 늘 배꼽을 내놓고 다녔다. 여름철 정자나무 밑에서 낮잠을 잘 때면 드르렁거리는 그의 코고는 소리와 함께 배꼽이 오르락내리락 출렁거렸다. 아이들은 키득거리면서 배꼽을 구경하다가 배꼽에다 흙을 한 줌 넣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깨지 않고 잠을 잘 잤다. 사람들은 그의 배꼽에 복이 있다고 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헤헤 웃었다. 그가 바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그렇지 어깨너머로 글도 익혔고, 일도 어렵지 않게 금방 익히곤 했다. 천성이 순박하고 낙천적인 사람이어서 누구와 싸운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오면 눈을 껌벅거리며 그저 잘못했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누가 무슨 일을 부탁하면 싫다고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갑자기 비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한밤중이라도 벌떡 일어나 이웃집 비설거지를 도우러 나갔다.
처복이 있었던가, 천생연분이었던가. 그의 아내도 이러한 그의 성격처럼 넉넉하고 편했다. 부지런하고 수더분해서 도무지 남의 흉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부창부수였다. 그가 아들을 낳았다. 아들도 그를 닮아 실팍했다. 어지간한 추위에도 웃옷 하나만 입고 아랫도리는 발가벗고 다녔다. 그래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힘이 없는 아이나 몸이 아픈 아이를 돕는 일을 거의 떠맡다시피 했다. 힘든 일은 자진하여 나섰고 아이들이 시키는 일을 잘 들어주었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그를 얕보지는 않았다. 거의가 그의 도움을 몇 번씩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의 욕심을 챙길 줄 모르는 아이였다. 때로는 다른 아이들 책가방을 두 개씩 들어다 주기도 하였지만 부모도 야단을 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나이를 먹어 장가를 갈 즈음 갑자기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멀리 충청도 어디로 간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왜 갑자기 이사를 가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 가는 데가 없었다. 그가 이사 가던 날, 처음으로 그의 눈물을 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를 전송했을 때 그는 훌쩍훌쩍 울었다. 그의 아내는 목을 놓아 울었다.
그가 마을을 떠나자 온 동네가 허전하였다. 그를 상대로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은 이제 농담할 상대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급한 일, 바쁜 일에 그를 부르러 왔던 사람들도 이제는 부르러 갈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동네에서 수십 년간 이장을 보아왔던 김 씨네가 이사를 갔을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허전함이 사람들 가슴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 입에 전설처럼 오르내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얘기도 차츰 사람들 입에서 멀어지고 기억도 희미해져 갔다.
며칠 전 친구 집에 갔다가 목각인형 하나를 보았다. 지게를 진 채 배꼽을 드러내 놓고 헤- 웃고 있는 인형. 어쩌면 그렇게도 그를 닮았을까. 한참 동안 망연하게 그 인형을 바라보았다. 윗니를 드러내 놓고 웃고 있는 인형의 모습에는 감추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근심 걱정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불룩한 배에 붙어 있는 배꼽도 크고 복스러운 배꼽이었다.
친구에게 그 인형을 며칠 빌려 달라고 했다. 인형을 가지고 집에 와서 다시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절로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기분 좋은 날 그를 바라보면 더 즐거워졌다. 기분이 나쁜 날에도 그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의 웃음이 나에게 옮아와 즐거워졌다. 그 인형은 오랫동안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었다.
인형을 바라보고 있던 며칠 동안 고향의 배꼽쟁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되었을 그가 지금도 전에 간직하고 있던 그 웃음을 잃지 않고 있을까. 그는 어디에서 살고 있으며 그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들리는 말로는 이사 가기 전날 뒷동산 공동묘지에 있는 그의 아버지 산소에 가서 오랫동안 목을 놓아 울었다고 했다. 늘 헤헤 웃기만 하던 그에게도 목을 놓아 울어야 했던 애타는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서러운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왜 이사를 갔으며 어디로 갔을까.
그를 생각하면서 목각인형을 다시 바라보니 그 웃음 속에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다. 헤헤 웃는 웃음 속에 한 가닥 서러운 울음도 감추어져 있는 것 같다. 흔히들 엉엉 소리 내어 울어대는 값싼 울음이 아니라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어야 했던 속울음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일생에 단 한 번 울어보는 진한 피울음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세상 어디엔가는 울음을 모르고 웃음 속에서 사는 행복한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하여 왔지만 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나보다 실망했는데 목각인형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번쩍 스쳐가는 번개 하나를 발견하였다. 목각인형!
내가 찾던 행복한 파랑새는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