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지에 꽃이다.
잠시 봄을 더디게 했던 꽃샘추위가 물러가면서 회색이던 대지에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물이 돋는다. 그 푸른빛을 열고 쉴 새 없이 꽃잎이 피어나고 있다. 제일 먼저 백·홍·청매가 피는 줄도 모르게 피면서 산수유가 섬진강 변을 따라 봄의 전령사처럼 몰려왔다. 길가의 샛노란 개나리도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봄 벌들을 불러 모은다. 개나리 울타리 넘어 강변길에는 흐드러진 벚꽃 잎이 눈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진달래도 여기저기 산불을 질러 타오르는 중이다.
해마다 오는 봄은 설렘이고 아련한 그리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아무도 몰래 가슴 속에만 숨어있던 아스라한 사연도 봄이면 살며시 상념을 일깨운다. 내게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추억 속에 헤매게 하는 고운 그림이 있다. 그 추억을 되새김질하면서 지루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늘 새롭다. 물론 오늘도 그랬다. 35년은 족히 지난 어느 날의 기억이 꼬물꼬물 오래된 사진첩처럼 펼쳐졌다.
봄기운이 완연한 오후 수업 시간이었다. 식곤증 때문에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불현듯 백마 탄 왕자님이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중·고등학교가 한 울타리에 있었다. 고등학교 운동장을 같이 사용하였는데, 마침 그 시간은 고등학교 선배들의 교련 실습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교련시간에 목총을 들고 사열과 분열의 제식훈련을 했었다.
그때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은 그 오빠가 왜 그리 멋있고 씩씩하게 보였던지.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선배만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해댔다. 어쩌다 교정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은 온종일 설렘에 밀려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통 그 선배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다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말 한마디 하지 못했고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그렇게 내 첫사랑이 1년도 넘게 짝사랑으로 지속하던 어느 토요일 오후 자전거 한 대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순간 숨이 멎어버렸다. 그 오빠였다
“야 깜상, 집에 가는 거야? 태워줄까? 아니면 가방이라도 실어줄게” 했다,
‘내 별명이 깜상 이라는 것은 어찌 알았을까? 선배가 내게 왜 그리 친절할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유난히 까만 피부 탓에 내 별명이 깜상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나의 반응도 무시한 채 내 가방을 빼앗아 자전거에 싣고 골목길 담장 너머로 삐죽 내민 라일락 나무 가지를 힘껏 흔들어놓고서 횡 하니 가버렸다. 골목길은 온통 라일락 향기로 가득 찼고 꽃잎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둘은 자전거를 끌고 이십 리 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다. 내 마음을 읽었다고 했다. 당차고 왈가닥이던 내가 자기 앞에만 서면 수줍어하는 모습을 일 년 동안 지켜봤다고 했다. 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고 했다. 사춘기를 다 지나온 선배다운 말투로 내게 조곤조곤 훈계하며, 내가 라일락꽃처럼 수수하다고 어르기도 하고 그 골목을 지날 때마다 내 생각을 했다며 감미로운 말투로 속삭이더니 그는 말했다.
“다 풋사랑일 뿐이란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공부해야 할 시기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서도 그 마음 변함없으면 그때 제대로 한번 사귀어 보자!” 그렇게 일방적으로 설득당하고 가슴속에 남몰래 심고 가꾸던 짝사랑은 정리됐다.
그래도 난 늘 믿었다. 헤어짐은 만남이 전제된다는 것을. 내 바람이 적중했던지,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때쯤 어느 날,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나름대로 나는 소설의 줄거리와 드라마촬영장의 세트와의 연관성을 애써 설명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강원도의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분이 내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앞에 놓고 열심히 설명하는 게 아닌가?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엿들었다. 서희와 길상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성과 억양이 너무 낮 익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도 익숙한 말투 그대로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쩌면 말투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깡마른 체구에 단정한 옷차림까지 여전하다. 나도 모르게“선배님! 깜상 기억하세요?”아이들이 있건 말건 부끄러움도 잊은 채 세월을 훌쩍 되돌려 어느새 나는 중학교 소녀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를 멍하니 한참을 쳐다보더니 그는 씩 웃었다. 제자들과 체험학습 왔노라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해후였지만, 그 시절처럼 말도 못 하고 쑥스러워하지도 않았다. 토지의 드라마 촬영지에서 지난 짝사랑과 첫사랑을 회상하며 시원한 재첩국으로 점심도 함께 먹고 백 년 전 서희가 앉아서 바라보았던 그 마루에서 앉아서 여유롭게 차도 한잔 마시며 추억을 되새김질했다. 그리고 다음에 또 보자는 막연한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다.
꽃향기 가득한 봄이 오면 나의 추억이 슬그머니 창고에서 나온다. 그래서 더 싱그럽다. 그것은 당찼던 꿈도, 살갑던 사랑도, 때로는 혼자서는 감당 못 할 고단함도 저장해두는 나만의 보물 창고다. 어쩌면 그렇게 해마다 열리는 창고 속의 추억들도 세월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고와지거나 내 입맛에 맞게 변하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의 부피도 달라지고 저장된 창고의 깊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랴. 변하는 것이 세상이고 사람인 것을….
봄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엔 이제 막 봉우리를 맺은 라일락꽃 향기가 벌써 내 코끝에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