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언제부터인가 지우개가 들어와 산다. 전세 계약을 한 적이 없건만 지우개는 제멋대로 들어와 내 기억을 뭉텅뭉텅 지운다. 저마다 조금씩 건망증이 있다지만 나는 그 정도가 심해서 일상 속에서 흔히 낭패를 보았다.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하시며 건망증을 탓하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인데, 요즘은 내가 자녀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 돼버렸다.
돌아보면 나의 건망증은 일찍부터 소질을 보였다. 첫 아이를 기를 때 젖병을 소독한답시고 태워 먹은 것이 건망증의 시초였던 것 같다. 젖병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채 외출했다가 한나절 만에 귀가하니 냄새는 둘째 치고 냄비가 불덩이가 되었다. 최근에는 사골을 우려내다가 하마터면 집까지 태워 먹을 뻔한 적도 있다. 무선전화기를 냉동실에 넣어둔다든가, 전화로 수다를 떨다가 냄비를 다 태우기도 했다. 실컷 짬 내어 은행에 갔는데, 통장이나 낼 고지서를 안 들고 가서 낭패를 본 적도 있다. 또 한 번은 동생과 휴대전화로 실컷 수다를 떨면서 휴대전화를 찾기도 했다. 동생은 “아이고! 우리 언니, 건망증 어찌할까? 지금 통화는 뭐로 하는데?”했다.
그렇지만, 어지간하면 직장에서는 실수 안 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쩌다가 서류 하나만 빠트려도 “아줌마의 건망증은 아무도 못 말린다.”라며 놀리는 동료의 농담에도 민감해진다. 그런데 엉뚱한 이유로 건망증을 탓하며 한바탕 원맨쇼 했던 일이 있었다. 근무시간에는 늘 버릇처럼 휴대전화를 모니터 밑에다 두고 일한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두서너 시간 일을 끝내고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찾으니 없다. 차분하게 지난 시간을 되감으며 내 동선을 하나하나 점검해봤지만, 오리무중이다. 심지어 화장실 휴지통까지 뒤졌고 급기야 동료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가끔 젊은 동료 둘이서 휴대전화를 감추며 귀여운 장난을 친 전 적이 있었기에 신호가 가면 무슨 반응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내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해놓고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무표정이다. 그렇다고 “내 전화기 감췄느냐?”라고 물어보면 오히려 “또 어디다 두고 그러시느냐?”라며 애꿎은 건망증만 들먹일듯해서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저 여자가 왜 갑자기 여기저기 다 들춰보고 다니는 거야?’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사무실 냉장고, 휴지통, 서랍, 캐비닛 서류함, 신발장까지 뒤지며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본 끝에 다행히 외부에서 사람이 다녀간 기억을 떠올렸다. 사무용품을 배달 온 거래처 사람이 카드체크기를 내 책상에 올려놓고 결재한 일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와 통화 끝에 내 휴대전화가 카드체크기와 색깔이 비슷해서 자기도 모르게 가방에 넣고 갔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전화기를 찾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동료를 괜히 의심한 것이 은근히 미안했다. 얼른 가게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그들의 손에 들려줬다. 영문도 모른 채 맛있게 먹는 동료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퇴근했던 그 기억은 어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잊히질 않고 생생한 걸까?
최근에는 차를 몰고 시장에 갔다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낑낑거리며 집에 다 와서야 시장에 차를 두고 온 걸 생각해내기도 했다. 친구의 이야기가 재미없다며 타박해놓고, 다음 날 내가 그 친구에게 같은 내용을 재미있는 이야기라며 말했다가 핀잔을 들었던 일, 시장 보러 가면 꼭 한 가지씩 빼놓고 사는 건 일상이고 하물며 출근하면서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TV는 컸는지 확실하지 않아 마당까지 나왔다 다시 들어가 확인하는 일까지 내 건망증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건망증은 참 짓궂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 기억을 군데군데 지워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면서, 정작 정말 기억하기 싫은 까마득하고 부끄러운 옛일은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처럼 선명하게 펼치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치매 오는 거 아냐?”하고 지인이 던지는 농담이 진담처럼 들려 병원을 찾은 적도 있는데 다행히 내 건망증은 단기기억에 속한다는 의사소견은 들었다. 기억은 크게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나누는 데 오감으로 얻은 정보는 단기적으로 뇌에 저장이 되어 반복적인 학습에 따라 장기기억으로 되는데 학습되지 않은 기억들이 건망증의 주범이 되는 거란다.
살면서 내가 겪는 일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머릿속에 담아둔다면 과연 행복할까? 슬픈 일, 궂은일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고 살다 보면 머릿속은 아마 터져버리거나 정신 분열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울 것은 지우고 지운 만큼 더 따뜻한 기억으로 다시 채우라’는 삶이 베푸는 배려라고 위안 삼아보련다.
그리스 신화에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갈 때 마지막으로 망각의 강인 ‘아케론강’을 건넌다고 한다. 그 강을 건너면 살았던 모든 기억이 지워져 텅 빈 상태로 저승에 간다고 한다. 죽으면 다 잊어버리는 기억이라면 미리 조금씩 잊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잊어버리는 건 다시 채울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잊어가며 새롭게 기억하며 사는 게 인생 아닌가?
내 어머니의 머릿속에 있던 지우개가 지금 내 머리로 들어와 버티고 사는 건 아닌지. 어쩌면 잘 산다는 건 잘 잊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우개 녀석, 계속 말썽을 부리면 전세금을 확 올려서 내라고 ‘내용통지’를 보내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