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메시지가 왔나 알아보려고 호주머니를 더듬었으나, 있어야 할 휴대전화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옆자리의 아내도 놀란 듯 내 가방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안의 푹신한 안락과 가뿐한 기분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3박 4일의 북경 여정을 머릿속에 그리던 설렘도 금세 가라앉았다. 휴대전화를 빠뜨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에 찬바람이 일었다. 마련한 지 몇 달 안 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가족에게 카카오톡도 날리며 멋 좀 부리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공항버스에 오르기 전에 머리를 빗으려고 들고 있던 전화기를 대기실 의자에 놓았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버스는 나의 긴박한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준비물을 완벽하게 챙기겠노라며 수일 전부터 수선을 떨었던 나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소지품인 휴대전화를 빠뜨렸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아내마저 귀찮다며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나섰다.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나는, 정류장까지 우리를 실어다 주었던 사위가 생각났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청년은 자기 일인 양 걱정하며 전화기를 빌려주었다. 그러나 가족의 전화번호가 도통 떠오르지 않으니 이를 어쩌랴.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연락처를 휴대전화에 저장해두었다지만 가족의 전화번호는 기억해두어야 할 것 아닌가.
내 기억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 부끄럽고 황당했다. 얼핏 떠오르는 번호를 여러 차례 눌러본 끝에 천만다행으로 딸과 통화에 성공했다. 휴대전화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출발한 지 30여 분이 지났으니, 정류장에 다시 찾아간들 전화기가 그 자리에 있을까. 또다시 마음을 졸이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사위로부터 연락이 왔다. 차를 돌려 정류장에 가보니 천만다행으로 대기실을 관리하시는 분이 보관하고 있었단다. 마지막 퍼즐이 해결되자, 엉클어졌던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이렇듯 나를 통째로 흔든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비행기에 오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차피 벌어진 일.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고쳐먹는 일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두고 온 휴대전화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자고 작심했다. 지인과 며칠 동안의 단절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순전히 나의 실수 때문에 발단된 일이지만, 구속으로부터 해방될 절호의 기회라며 애써 마음을 고쳐먹었다.
집에 돌아가면 휴대전화와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북경에 도착한 뒤에도 옆 사람의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내 것이 아닌가 하여 무심코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기도 했다. 행여 집안에 무슨 일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얼핏 지나갔지만, 쓰잘머리 없는 걱정이라며 애써 태연해했다. 그동안 아무 일 없다가 하필 여행 기간에 무슨 일이 있을 턱이 없겠지 하며 다독였다.
생각을 어느 정도 바꾸는 데 하루가 걸렸다. 휴대전화가 차지하고 있었던 심리적 공간에 다른 것들을 채울 수 있으니 썩 괜찮은 일 아닌가. 덕분에 짊어지고 온 카메라가 바쁘게 작동하며 제구실을 톡톡히 했다. 나의 동반자 휴대전화는 오랜만에 집에서 한가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으리라.
나흘 만에 집에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열어보았다. 그동안 지인들이 다녀간 흔적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예전의 상태로 돌아간 셈이다. 제일 먼저 챙긴 물건이 휴대전화라니, 앞으로 전화기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아야겠다는 나의 다짐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었다. 야무지지 못한 내 성격을 생각하면 애초부터 무리한 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휴대폰 없는 아찔한 경험을 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구속을 선택한 안일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문명의 이기(利器)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나 역시 그것을 부림으로써 생활의 편의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휴대전화 등 정보기기가 나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잠시라도 곁에서 사라졌을 경우, 공허와 불안에 떨고 있는 나를 확인하곤 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은 인간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닐 성싶다. 넘치는 정보기기를 외면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매달려 스스로 구속당할 지경이 되면 결국 그들이 나를 부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지나치게 가까이 두어 그 불꽃에 데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거리를 두어 불편해한다면 이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삶이리라. 조금은 느슨한 관계 설정이 필요할 것 같다. 유혹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마음을 다잡는 일은 내 몫이다. / 문경근
* 전 초등학교 교장 * 수필가, 대한문학(수필) 등단 *수필집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 출간
* 제14회 공무원연금수필문학상 공모 수상 *전북문인협회, 정읍내장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정읍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