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날에 함박눈이라니, 좀 과하다 싶다. 해마다 이맘때면 꽃샘바람이 불고 꽃샘추위가 심통을 부려왔지만 올봄은 더 유난하다.
봄은 그 옛날 내가 혼자 애태우며 좋아하던 갈래머리 여학생처럼, 내 가슴을 온통 흔들어놓는 계절이다. 조금 암팡져 보이고 눈매가 깊던 그 아이(L이라 하자)가 처음 내 눈에 뜨였을 때, 나는 현기증처럼 머리가 텅 비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꽉 막혀 숨을 쉴 수 없었고 어디서나 막힘없던 내 입은 혀가 굳어 달싹하지 못했다. 얼굴은 잉걸불앞에 앉은 듯 화끈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동통하고 날씬해보이지도 않았던, 동그스름한 얼굴에 풋풋하고 평범한 여학생, 걸음걸이가 경쾌하고 귀엽던 L이 내 마음을 끌어들인 건 그 눈빛이었다. 조금 깊어 보이던 눈을 약간 찌푸리기라도 하면 난 오금을 펼 수 없었다. 서시(西施)의 아미를 본 물고기처럼.
기린로변에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는데 함박눈이 내려 눈을 덮어쓰고 있다. 목련의 색은 그냥 하얀색이 아니다. 고귀한 부인의 목에 걸려있는 최상급 진주의 색깔처럼 은은한 ‘펄 베이지’색이라고 하면 옳은지 모르겠다. 어느 것 하나 덜 핀 봉오리 없이 화사하게 피어 자태를 뽐내던 목련이 눈을 맞았으니, 내일쯤 보면 냉해를 입어 적갈색으로 변한 꽃잎이 추레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 화사한 목련에 누가 눈을 뿌려 찬란한 순간을 빼앗았는가?
내 친구 여동생의 친구이던 L을 처음 본 것은 교동 남천교 바로 앞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내가 친구 집에 막 들어가던 때 친구 여동생과 L이 마당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 여동생이 오빠 친구라고 날 소개했고, L이 고개를 까닥했던 것 같은데, 그 자리서 얼어붙은 듯 정신을 차릴 수 없던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거의 정신 줄을 놓았던 것 같다. 입도 벙긋 못하고 넋이 나간 채 서있는데 친구 녀석이 나와서 날 데리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봄꽃은 산수유가 노란 불을 밝혀 세상을 꾸미고 향기 그윽한 매화가 매향(梅香)을 뽐내는 정경도 좋지만, 귀부인의 자태처럼 화사한 목련이 담장 밖에 가지를 내밀어 너울거릴 때 비로소 봄다운 봄을 느낀다. 고결한 백목련이 귀부인 같다면 ‘레드 바이올렛’의 자목련은 30대 후반 쯤의 농익은 요염함을 발산한다. 목련은 희거나 자색이거나 피어 만발해 있는 기간 동안만 예쁘다. 냉해를 입든지 시들어 떨어지거나 한 목련꽃잎은 너무 처연하다.
그날, 친구 녀석은 넋이 나간 나를 놀리면서 L이 명랑하고 착한 아이라며, 연년생인 동생과 중학교 동창이고 철로 밑 길을 지나 이목대와 지금 천주교 교구청 사이의 대밭동네에 산다며 이름까지 일러주었다. 운수업을 하던 그 친구네 집이 곧 서울로 이사를 갈 계획이었는데 가기 전에 중매를 서주겠다고 설쳐댔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되긴 했지만, 당장에라도 L이 있는 동생 방으로 가자는 친구의 너스레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극구 말렸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주저앉혔다.
갑작스레 내린 눈에 일찍 핀 목련은 물론이고, 막 피려던 목련들도 냉해를 입었을 것이다. 추위를 견디며 봄을 기다려온 목련이 꽃샘추위에 얼어 단번에 좌절하듯, 내 인생도 꽃피어야할 시기에 엄청난 시련을 당하여 꺾이고 말았
다.
친구가 서울로 이사 간 뒤에도 지금의 교육대학 전신인 전주사범학교에 다니던 L을 거의 매일 통학 길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교동에서 북쪽으로 곧장 가는 지름길을 마다하고 L의 통학로를 따라 학교에 갔다. 어쩌다 만나지 못하면 궁금해서 오후 수업을 빼먹고 도망쳐 나와 L의 하학 길을 지켜 기어이 얼굴을 보았다. 그저 보기 만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짝사랑이었다.
이듬해 새 학년이 시작된 봄, L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이목대 언덕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으로 가지 않고 그 진달래언덕에 가서 L의 집을 내려다보며 어둑발이 내릴 때까지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 서로 낯이 익었으니 만나서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좋은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솔솔 나를 유혹했다.
그렇게 기회를 벼르고 있던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 쿠데타로 민주당 정권을 무너뜨려 권력 쥐고 정치자금을 마련하느라 밉보인 기업이나 민주당과 가까웠던 사람들의 재산을 마구 탈취했다. 그때, 남대문 세무서에서 요직에 있던 큰형을 군인들이 잡아다가 부정축재자로 몰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큰형이 평생 모은 모든 재산을 뒤져 다 빼앗고 큰형을 놔주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잃고 우리 집은 풍비박산하고 말았다. 학교도 거의 나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도와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나는 L의 눈매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한눈을 팔 겨를조차 없었다.
이제 57년이 흘렀다. 막 핀 목련꽃이 찬바람과 눈에 처참한 꼴로 일그러질 걸 생각하다가, 그 시절에 내가 겪었던 그 처절한 아픔과 절망이 떠올랐다. 전혀 뜻하지 않게 모든 걸 잃었던 나처럼 목련도 냉해를 입어 처참한 몰골로 져갈 것이다. 하지만, 목련에겐 내년, 또 그 다음해의 봄이 있다.
시간은 모든 걸 다 해결해줄 것이다. 그 세월 앞에 유의미한 일은 별로 없다. 아직도 봄이면, 진달래꽃을 보면 아련히 떠오르는 눈빛은 무엇인가? 지금은 하얀 할머니가 되어있을 그 꿈결 같던 눈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