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에 대하여
변하는 것에 대하여
  • 전주일보
  • 승인 2017.12.28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수필
김 고 운/ 수필가

계절이 변하듯 우주의 천지만물은 쉼 없이 변한다. 처음 그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절처럼, 쉬지 않고 달리는 시간처럼, 눈에 보이도록 빠르게 변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바위처럼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변화를 감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고 있다. 지구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내부에서 폭발하듯 에너지가 넘쳐나는 지각활동을 하는 일도 생물이 성장하고 활동하듯 살아 움직이는 게 다른 형태의 생명활동인지도 우리는 아직 아는 게 없다.

거대한 우주의 활동과 생명의 기전은 우주의 시각에서 먼지에 불과한 우주의 작은 생명체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허블 망원경이 우주공간에서 새로운 그림을 보내올 때마다 우리는 놀라고 감동하고 있을 뿐, 수억 광년 저쪽의 일은 전혀 알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어쩌다 운 좋게도 지구라는 별의 작은 생명체에서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잠시 지구라는 별에서 생명을 얻어 짧은 시간을 살다가 죽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가을이 깊어간다고 생각하던 12월 초순에 추위가 들이닥쳐 늦가을의 정취를 앗아갔다. 곱게 물든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쌓인 길을 걸을 때, 옷차림은 조금 가벼워야 걷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갈잎 냄새와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까지 어울리게 되면 늦가을의 정취가 향기처럼 온 몸에 스며드는 그 맛을 위해 옷을 가볍게 입어야 한다. 가을은 가을의 색과 냄새와 소리와 바람이 걷는 이의 마음과 옷자락 사이를 스치고 휘도는 가운데 화학반응을 일으켜 낯선 정신세계를 연출해낼 때 비로소 가을다워진다. 그 화합물은 두텁지 않은 옷 사이로 스며들어 내 살갗에 향기로 머물고 내 정신세계에 또 한 번의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 추운 겨울을 나는 연료가 되고 새봄이 오는 기척을 감지하는 안테나가 된다.

제법 쌀쌀하던 엊그제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어릴 적 놀이터인 전주천변 한벽당을 찾아갔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문득 간데없는 그리움이 솟구칠 때면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전주천을 달린다. 60여년 세월에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래도 고향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전주천과 교동의 골목을 찾아가 기웃거려보면 아렴풋한 그 시절의 흔적을 찾아내기도 한다.

한벽당 아래 맑게 흐르는 물을 보며 그 옛날과 크게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그 물속에 피라미, 마자(모자), 송사리가 노니는 걸 보면서 60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답게 전주천을 보전한 시민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새로 놓인 오목교 아래를 들여다보다가 금세 한 토막 추억 속에 빨려 들어갔다. 그 자리는 옛날에 한벽당 물이 좀 줄어들 때면 자작하게 여울을 이루며 흐르던 자리였다.

 

그 시절에 우리 형제들은 헌 가마니에 소똥과 말똥을 주워 반쯤 담고 물에 흘러나가지 않도록 두어군데 새끼로 얽은 다음 자작한 바닥을 헤치고 가마니를 놓고 무거운 돌을 여러 개 가져다가 눌러두었다. 그런 10여일 후 밤에 솜방망이에 석유를 묻혀 만든 횃불을 들고 4형제가 가마니 속에 든 고기를 털었다. 꼬맹이였던 나는 고기 담을 양동이와 횃불을 들었다. 둘째형과 셋째형이 가만가만 돌을 들어내고 나서 가마니 네 귀퉁이를 잡고 한꺼번에 ‘와락’ 들어 올려 물 밖으로 나갈 때, 작은 형은 족대로 가마니가 있던 자리를 재빨리 훑었다. 뭍에서 가마니를 털면 뱀장어와 미꾸라지, 움지, 등 비늘 없이 꿈틀거리는 고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가끔은 참게도 나오던 그 밤고기잡기는 가마니 몇 장을 들추는 사이에 양동이가 그득했다. 뱀장어처럼 생겼지만 독이 있다는 움지는 내버리고 가마니에는 다시 쇠똥과 말똥을 넣어 그 자리에 놓았다. 그때 잡히던 뱀장어들은 크고 힘이 좋았다. 집에 와서 나무판자에 쇠 송곳으로 뱀장어 머리를 단단히 찍어놓아야 내장을 긁어낼 수 있었다. 장어를 토막 내서 숯불에 구우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입에 넣으면 탱글탱글 씹히고 고소한 맛이 요즘 양식 장어와는 비교불가였다.

넋을 놓고 추억을 넘나들다보니 서늘한 기운이 엄습한다. 흐르는 시간을 거슬러 60년 이전의 시간을 더듬거리느라 움직임을 멈춘 탓이다. 아련한 시간을 되짚어가느라 어쩌면 머릿속에서만 전류가 흘러 손발과 몸이 식어 추위를 느꼈을 것이다. 닿을 수 없는 시간의 깊이를 기억의 통로를 따라 찾아가는 일은 온전히 나를 잊어버릴 만큼 절실했고 짜릿했다.

그 시절과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졌듯이 전주천도 내 추억속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했다. 서있는 자리는 그때 그 자리는 그대로인 듯하지만, 소년이던 나는 늙어 머리가 하얀 노인이 되었고 여울이 흐르던 자리에는 어제(魚梯)를 넘어온 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물도 그 때의 물이 만경강을 지나 바다로 흐르고 다시 증발하여 비로 내리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다만, 소년이던 그때의 내 마음처럼 나는 아직도 물을 보면 반갑고 물속을 노니는 작은 물고기들이 내 발과 다리에 붙어 피부를 쪼아보게 하고 싶다.

추위조차 잊을 만큼 먼 시간속의 고향은 날 빨아들이듯 이끌었다. 문득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뱀장어의 미끈거리는 감각을 기억해내며 행복했다. 이 절실한 그리움을 찾으러 추위를 무릅쓴 보상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