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천지에 기다림이 없는 결실이 어디 있는가. 기다림은 시간을 전제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다. 시간 속에 기다림이 있고 기다림은 시간 안에 꽃피는 작업을 거듭하는 울림이며, 신의 손길이고, 영감의 제국이다. 기다림은 정신의 화학적 작용이고, 물리적 공간에서 그 깐깐한 성취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기다림은 기대치의 변화와 결과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않으면, 그 존재가 허허롭기 그지없다. 인간과 자연에 공존하는 기다림의 광범위한 족적을 아무도 추적할 수 없다. 그러나 자연의 순조로운 순환에 기여하는 기다림에 시선을 주면, 조금씩 그 성취의 기미를 눈치 챌 수는 있다.
꽃피는 계절의 화음은 봄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자에게 들려주는 자연의 축복이다.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순환은 동시적이며 다변적이다. 성장을 위한 진통이든, 변신을 위한 탈바꿈이든, 기다림의 미학 속에 웅크린 시간의 얼개가 자리 잡고 있다. 기다림은 소멸과 정면으로 맞서다 사라지는 눈雪과 같아 차츰 녹으며 작아진다. 기다림의 시작과 끝 사이에 한없이 덧없거나, 설레거나, 슬프거나, 권태로운 정서의 흐름이 있다. 머무는 시간마다 감정은 초조와 맞물리며 인내의 촉수를 시험한다. 발효나 부패의 연속적 시현을 통해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에 변화와 소멸을 이행시키는 역동적 투사로 기다림은 일사분란하게 고인 시간이다.
인간 세상에 가득 차있는 사랑이 눈물과 그리움으로 만나기 위해 결말을 응시하는 기다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런 기다림은 불안을 잉태하고 안타까움으로 앵돌아진 갈등과 시새움을 끊임없이 생성한다. 늘 그렇듯이 행복한 삶보다 불행하고 원망스런 인생의 어둔 그늘이 드리워진 운명과 만날지도 모른다. 삼류 소설과 연속극은 그런 기류로 극적 흥분과 긴장을 독자나 시청자에게 주입하거나 조장한다. 인간의 삶속에 점철된 영광과 절망의 순간도 기다림의 사연을 엮은 연출 뒤에 오는 환희나 슬픔의 현현顯現이다. 그러기에 기다림의 본질은 순수하고 오탁의 냄새가 없으면서 무정하다. 연습도 훈련도 필요치 않으며 성격과 상황의 알맞은 논리에 구색을 맞춘 시간의 전부이거나 일부일 뿐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겨울바람의 차가운 냉기를 견디며 촛불시위를 벌렸던 수십만의 시민들은 새로운 나라를 기다린 위대한 투사들이다. 바라는 바가 크면 클수록 기다림은 더욱 깊은 울림으로 사람 앞에 등장할 것이다. 역사의 줄기를 바꾼 거대한 대사일수록 기다림의 오롯한 인내가 필요했음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위대한 시와 소설의 등장도 기다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끈끈한 성과이며, 발명과 진보의 만다라도 기다림의 손길을 벗어나 성취된 것이 드물다. 그럼에도 온갖 소망을 걸머진 중생들의 가난한 삶에 그 일생을 다하도록 기다려서 마침내 웃음꽃이 피는 생애를 맞이할지는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는 시간의 간극에 캄캄한 미지의 기다림이 들어 앉아 있음을 볼 때, 우리의 초조한 기대는 희망의 일출과 슬픈 노을의 양면성이 있다.
지나간 삶의 아련한 그리움 속에는 어머님에 대한 추억이 가슴에 먹먹하게 남아있다. 고교 3년 야간 학습을 마치고 캄캄한 밤중, 별빛내리는 적막한 들녘을 지나 고향에 가까이 다가가면, 동구 밖 어름에 어머님이 남포등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춥고 무섭고 배고픈 서러움의 가슴에 어머님을 보는 순간, 눈물부터 쏟아졌다. 서러움이 가셔지는 어머님 남포등은 기다림의 따뜻한 기억으로 내 마음의 별이 되어, 삶 내내 나를 이끌었다. 아무도 기다려 주는 이 없는 삶은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하겠는가. 고향집이던 일반 가정이던 어둠을 밝히는 불빛은 지친 심신을 이끌고 귀가하는 사람을 위해 기다리는 안온한 사랑이고 평화이며 휴식이다. 시간의 침전물에 고인 기다림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온갖 종류의 감정이 광망을 뻗친다. 기쁨과 슬픔의 꽃이 아니면 가시다. 살아있음으로 하여 엮어지는 기다림의 표상은 그런 세상이다.
자연 생태계도 서로의 얽힘이 조율되어 또 다른 세상과 만나기 위해 기다림의 예행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자연의 진화와 적응의 단계에 어느 곳 하나도 기다림의 양광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다림은 무엇을 위한 시간의 성찬인가. 사랑, 야심, 탐욕, 원상회복, 그리고 모든 추상적 갈망들이 삶의 그물망에 촘촘히 빛을 발하며, 웅크리고 있다가 기다림의 세상을 열 것이다. 어떤 희열과 슬픔의 시간을 만나던, 그들 모두 결국 죽음의 적멸을 맞이하는 불꽃들이다. 지금도 어느 곳에는 태어나기를 기다리는가 하면, 어느 곳은 죽기를 기다리는 삶의 축도가 기다림의 흐름 속에서 표연히 이어지고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