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내겐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달이다. 살가운 바람에 실려 오는 꽃소식이 당도할 때면, 겨우내 찬바람에 움츠렸던 가지마다 꽃봉오리를 밀어 올려 피우느라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거친 숨소리가 궁금해진다.
봄에 피는 꽃이 어느 것인들 좋지 않으랴 만, 진달래와 목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진달래야 시골에서 자랐으니 당연하지만, 목련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시간에 ‘4월의 노래’를 배우면서 선생님이 창밖의 목련을 가리켜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목련꽃 피는 언덕에서 베르테르 편질 읽노라 /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 돌아온 사월은…….”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를 배우던 시간이었다.
창가의 자리에 앉았던 나는 순백인 듯, 아닌 듯 보이는 은은한 꽃봉오리와 꽃잎을 열다가 수줍은 듯 멈춘 그 자태에 넋을 잃었다. 반쯤 열린 꽃잎이 며칠 전 보았던 그 여학생 교복의 흰 컬러와 고운 얼굴로 보였다.
나는 당시 화원동(지금의 경원동) 숙부 댁에서 학교에 다녔다. 숙부님 내외는 직장관계로 신태인에 가 계셨고, 할머니께서 사촌 동생들을 돌보아주고 계셨다. 1960년 4월 초 입학시즌이었다. 둘째 사촌여동생 금옥이가 풍남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숙모님이 일부러 오실 수 없어서 내가 학부형이 되어 데리고 갔었다.
입학식과 반 배정이 끝나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가고 학부모들은 교실 밖의 양쪽 유리창을 통하여 아이들을 살피게 되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적응하는 모습을 살피느라 유리 반사를 손으로 가리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내 맞은편에서 교실을 들여다보는 J여고 교복차림의 여학생 눈매에 시선이 마주쳤다. 자꾸 그 눈매에 내 시선이 따라갔다. 내 가슴에 물결이 일렁이었다. 난생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가슴에서 큰 북이 울리듯 쿵쾅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눈을 바라볼 수가 없어서 내가 눈길을 피해야만 했다.
다음 날 보니, J여고생의 남동생과 내 여동생은 책상짝꿍이었다. 아이들은 금방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더니 금방 어울려 앉았다. 그 바람에 우리도 얼떨결에 어색하게 알은척하며 눈인사만 살짝 건넸다. 가까이서 마주하여 본 그녀의 맑은 눈빛에 몸이 굳어지며,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은 온 종일 공부도 되지 않았고, 그 눈빛이 어른거려 밤잠도 설쳤다. 셋째 날부턴 3학년 언니와 함께 가면 되는데도 일부러 따라갔다. 그런데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눈을 감아도 떠도 눈앞에 어른거리던 그 눈동자를 언젠가는 보겠지 애태우던 참에, 창밖의 목련에서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 초여름, 그 여학생이 등교하는 모습을 개울을 사이에 두고 먼발치서 보았다. 그토록 그립던 내 목련꽃을 다시 보았던 그때의 느낌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도록 황홀한 반가움이었다. 당장 첨벙첨벙 개울을 건너가 반가운 마음을 전하고 싶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 눈길만 스쳐 가버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여러 번 비껴가면서도 언제나 마주치는 눈길로 끝났다. 말을 건넬 용기도 없었고, 사정도 허락지 않았다.
3학년이 되어선 5?16 군사쿠데타에 의한 어머니의 사업실패로 재산 공매처분과 대입 준비 때문에 딴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목포로 내려갔다. 1962년 4월이었다. 심란한 마음이나 달래려고 유달산을 찾았다. 유선각(遊仙閣)을 오르려는데, 하얀 꽃구름이 눈앞에 펼쳐졌다. 목련 수천 송이가 하늘을 가리고 선 장관은 멋졌다. 목련송이들 가운데에 그녀의 고운 눈매와 조용한 미소가 아련히 떠올라 내 가슴을 아리도록 파고들었다. 그렇게 목련은 내 작은 그리움이 되었다.
올핸 봄이 일찍 찾아왔다. 마당 한 구석에서 겨우내 떨고 서 있던 목련이 돌담 위로 찾아온 햇살과 몇 날을 속삭였다. 나는 연한 갈색의 꽃 주머니가 겉옷을 벗으려 할 때부터, 출산의 진통소리를 들으려 귀를 열어 놓았었다. 하지만, 마음의 귀가 열리지 못한 탓인지 듣지 못했다. 다만,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하얀 모습으로 세수하는 뒷목만 훔쳐보았을 뿐이다. 하나가 깨어나니 너도나도 다투어 피어났다. 수줍게 피어난 순간, 그때서야 나무 연꽃들은 봄의 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목련 같은 그 여고생에게 끌렸고, 숱한 나날을 그리움으로 애태우며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보던 풋풋한 시절의 추억이 지금도 아련할 뿐이다.
백목련 햇볕에 묻혀
눈이 부셔 못 보겠다
희다 지친 목련꽃에
비낀 4월 하늘이 더 푸르다 -(후략)
오늘은 유독 신석정(辛夕汀)선생님의‘가슴에 지는 낙화(落花)소리’라는 시가 어울리는 날인 듯하다.
문광섭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