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시설의 장애인 친화성을 강화에 나섰다. 신·증축하는 숙박시설 전 객실에 장애인 이동을 쉽게 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시설을 의무화했다. 모든 객실에서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시각장애인 자막 티비, 화장실 손잡이 설치 등 장애인이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시설 구비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위안부문제 등 자신들이 저지른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반성도 안하면서 서비스업종을 이용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을 마련하는 일본, 두 얼굴인가. 비약해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해 보다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 논리라고 한다면 지나친 폄하인가.
그러기에는 우리 얼굴이 너무 부끄럽다.
아시아 최고,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는 광주국립아시아전당의 장애인 접근도를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진다. 문화전당은 배리어 프리는 커녕 장애인들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문화전당 접근권 대책위원회는 지난 2015년 개관을 앞둔 점검에서 ‘장애인은 들어오지 마!’와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절규했다. 휠체어의 공연장 진입은 아예 불가능했고 화장실 내 응급 벨이나 긴급전화 설치도 마련되지 않는 등 장애인 장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개관 1주년 즈음에 많은 부분을 개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 장벽은 높고도 깊다는 것이 관련 단체의 주장이다.
개선이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 건축가가 지은, 세계 최고의 건물 등등의 허명에만 매달려온 우리의 천박함의 실체다. 건강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공공공간이 아니다. 차별과 배제의 다른 이름이다.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 기치가 사지멀쩡한 건강한 사람 중심이라면 이는 절름발이고 폭력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문화’, ‘국립’이라는 이름이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배리어 프리는 말 그대로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1974년 유엔 장애인 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보편화된 개념이다.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도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심리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장벽’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