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과 야당이 대치하며 나라 정치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불통 정치를 이어가는 대통령은 여당이 동의하지 않은 모든 법안에 대해 임기 절반을 지나는 동안 24번의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의 기능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올해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며 시정연설도 하지 않고 국무총리를 보냈다. 야당이 장악한 국회가 싫어서인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지만, 예산안을 제출하는 정부의 태도라는 정황을 생각하면 옳지 않아 보인다.
◆ 예산국회와 갈등 자초
예산안을 대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심기가 불편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부 예산 심의에서 용도를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은 검찰과 정보업무 관련 기관의 ‘업무추진비’ ‘정보비’ 등을 ‘0원’으로 삭감해버렸다는 후문도 있다.
국회가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요즘이야말로 ‘모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는 속담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할 때다. 그런데 대통령이 관례를 무시하고 시정연설조차 하지 않았으니 국회의 예산 심의가 편하게 이루어졌을 까닭이 없다.
이런 대립 관계 속에서 국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민생 법안도 견제와 갈등 속에서 시의적절하게 만들어지지 못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도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멈추어서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 허망한 약속
대선에서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당선한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임기 절반을 넘긴 지금 윤 대통령의 약속대로 인권과 공정의 가치가 구현되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가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됐는지 생각하면 망신만 당하는 나라로 부끄러운 모습만 보였다.
스웨덴에 있는 국제 연구단체인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에서 발표하는 민주주의 수준 지수에서 한국은 2019년 18위, 2020~2021년에는 17위로 평가되었으나, 2022년 지수는 29위로 내려앉았고 2023년 지수는 50위로 추락했다.
이 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한국이 독재화되어 간다고 표현했다. 이들의 평가 기준은 ‘선거 민주주의 지수’ ‘자유민주주의 지수’ ‘평등민주주의 구성요소’ ‘참여민주주의 지수’ ‘숙의민주주의 지수’ 등 6개 항목을 평가한다.
◆ 부끄러움은 국민 몫
어쩌다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국민은 답답하다. 한류가 세계 각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한국의 식문화와 생활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 절호의 기회에 정부의 역할은 전혀 없다. 외려 한심한 정치 행태로 부끄러운 민낯만 보이고 있다.
국민과 기업들이 죽어라 끌어올린 국격(國格)을 대통령과 정부가 끌어내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 내외가 외국 순방 중에 명품 쇼핑 사실이 해외 언론에 공개되어 망신을 떨기도 했다. 예비비까지 끌어다가 해외 순방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를 겪으며 가까스로 버티느라 안간힘을 쓰는 국민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정부다.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져도 내 식구 감싸기에 열심인 대통령에 국민은 절망한다.
근소한 차이로 당선한 대통령이라면 민심을 살피며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 일을 위해 진력해야 옳다. 그런데 당선했으니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민심을 돌아보지 않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
정권에 대한 전국 각 대학교수와 연구자들 시국 선언이 2,000명을 넘어섰다. 참여한 대학이 56개에 이르고 교수와 연구자들은 현재 대한민국이 위기 상황에 몰려있다고 지적했다. 각 분야에서 민주적 절차와 제도가 무너지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했다.
교수들의 시국 선언에는 한반도의 전쟁위기와 서민 생활의 어려움, 의료 대란으로 국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의혹 등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들 의혹에 대한 특검을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더불어 교수들은 검찰의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비판했다. 가톨릭대 교수들은 “윤석열 정부는 검찰 권력을 남용해서 사적 이득을 추구하고 보호하는데 거리낌 없는 행태를 자행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국정농단을 언급하기도 했다.
◆ 이제라도 달라져야 한다
국내 시민사회 일부 법률 전문가들이 최근에 유엔 사법독립 및 고문방지 특별보좌관에게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 대한 선별적 수사 등 한국 검찰의 권한 남용방지 행태를 지적하고 유엔의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박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와 박상기 전 법무장관, 하태훈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서명한 서한은 지난 8일 유엔 사법정의 특별보고관인 ‘마가렛 새터그웨이트 뉴욕대 교수와 고문방지 특별보고관 엘리스 질 에드워드 박사에게 발송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쇠귀에 경 읽기‘ 인 듯 국민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를 보다 못한 일부 인사들이 유엔에까지 국내 정세를 호소할 만큼 지금 이 나라는 불통 세상이다. 입맛에 맞는 인물들을 골라 중요 직책에 두고 맘대로 정치를 이어가는 상태로 2년 반을 갈 수는 없다.
각계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선언이 이어지고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어 터지기 직전이다. 이제라도 고집을 버리고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는 바른 정치로 돌아와야 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고 후회만 남게 된다. 검찰의 칼날 정도로 국민의 노화(怒火)를 감당할 수 없다. 국민이라는 큰물 위에 권력은 한갓 일엽편주(一葉片舟)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