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등이었어. 진보당에도 떨어졌던데.” “한달살이만 플레이하고 쉽게 생각한 거 아니야?” “후보 가가 우리 학교 다닐 때 학도호국단 학생장이었더라. 토론회 동영상에 야릇하니 미소를 짓던데.”
2주 전 영광군수 보궐선거를 두고 친구들끼리 나눈 대화다. 지난 10.16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전남 영광·곡성, 국민의힘은 인천 강화·부산 금정에서 승리해 현상 유지다. 대신 호남에서 22대 국회의원선거 때 비례대표 지지율 1위로 기대를 모았던 조국혁신당이 영광·곡성에서 군수 1명도 건지지 못한 것은 복기해봐야 할 문제다.
영광군수 득표율. 민주당 장세일(41.08%), 진보당 이석하(30.72%), 조국혁신당 장현(26.56%) 순서다. 선거 초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호각세를 이루며 당선을 넘봤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진보당이 1등, 민주당, 조국혁신당 3등이었다. 선거 결과도 민주당과 진보당이 바뀐 채 3등이다.
이른바 ‘칼갈이’ 생활정치의 저력을 보여준 진보당 이석하 후보는 “저는 영광군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군민 여러분의 곁에 있겠다.” 낙선 인사를 했다. 당원들의 ‘생활밀착형 봉사활동’이 큰 힘이 되었다. 고추를 따고 풀을 뽑거나 경로당 청소를 꾸준히 했다. 전남대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 후보는 귀향해 30년간 농사를 지었던 진짜 농부로 전해진다.
반면 장현 후보는 고려대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출신으로 서울과 광주에서 ‘타향살이’하다 이번 보궐선거에 뛰어들었다. 일찍이 평민당부터 시작해 민주당,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영광군수 도전까지 ‘들락날락’ 대목이 많다. 일부 언론에서는 ‘진보당이 혁신당을 이겼다’는 평까지 나왔다.
진보당은 지난 21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전주 을에서도 전력을 다했다. 당시 전국에서 몰려든 당원들은 출퇴근 시간에 전주시 전역 네거리에서 ‘꾸벅 인사’를 했다. 처음에 의아해하던 시민들도 바로 인지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진보당 국회의원을 만들어주었다. 감동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보궐선거 책임으로 후보를 내지 않았고, 국민의힘 후보는 맥없이 패했다.
지난 칼럼에서 독일 정당정치에서 메르켈 총리 집권 시 기민당(CDU)과 연정했던 기사련(CSU)에 대해 언급했다.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뮌헨이 속해 있는 독일의 가장 부유한 주(洲)인 바이에른주에서 ‘언제나 집권당’이다. 그렇지만 기사련은 바이에른 지역만, 기민당은 바이에른주를 제외한 독일 전역에서 활동한다.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 UK)으로 소개되는 영국에는 스코틀랜드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들이 많다. 지방 정치를 장악하고 영국 하원에도 다수 진출해 있다. 스페인에서는 한때 독립을 추진해 분리투표까지 갔던 바르셀로나가 주도인 카탈루냐주의 ‘카탈루냐 공화좌파당(ERC)’, 바스크주의 ‘바스크 국민당’이 있다.
또 캐나다 프랑스어권인 퀘벡주를 기반으로 하는 ‘퀘벡블록(QB)’은 연방하원 선거에도 매번 10% 안팎의 의석을 확보한다. 철저하게 지역 기반 정당들이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 “정치가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며 1920년대를 ‘혼돈의 시대’라 명명했다. 100년 뒤 지금, 한국의 정치가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치가 김건희 여사 관련 국정농단 소식이다. 한국도 ‘혼돈의 시대’다. 상식은 눈 씻고 찾아도 없다. 이미 저 먼 동네 이야기다.
또한 전북도 마찬가지. 상식은 그저 멀다. 얼마 전 지역 뉴스는 “남원시 수행비서가 9급에서 6급까지 초고속 승진”이라며 충주의 유튜버 방송 주무관보다도 빠르다고 전했다(JTV 10.15). 군산시 태양광 발전소. 전주시의 무분별한 “전주천·삼천천 버드나무 베어내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비상식적인 일이 민주당 지방정권하에서 벌어지고 있다.
“당 간판만 가리면 TK나 호남이나 충청 심지어 강원도까지도 전국이 다 똑같아” “근다. 다른 게 뭐 있어 지역민을 위한 차별화된 전략이나 정책이 뭐가 있지?” 다시 친구들 울분이다.
전북인들은 여전히 이재명 민주당에 정권교체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총선에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2표를 가지고 ‘지민비조’로 각기 다른 1표를 행사했다.
중앙정치에서는 이미 ‘엎지른 물’이지만 지역만큼은 ‘감동과 상식’이 살아있는 공동체를 원한다. ‘아파트나 마을에 외롭게 사는 노인들’ ‘장애인’ ‘결손가정’ 등 소외되고 파편화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정치를 필요로 한다. 감동의 정치다.
“윤대통령 공격에 민주당보다 더 앞장설 거라고 찍어 주었더니 그도 아닌가?” 또 한바탕 거든다. “지방정치에 보다 공세적이고 친애적인 정책 내놓아야지. 학도호국단 애들 공천하고 그러면 완전 폭망 허지.”
전북을 통해, 어머니의 자상함과 나라를 바꿀 굵직한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제 조국 대표는 답해야 한다. 1년 반 뒤 지방선거에 조국혁신당도 “스스로 21대 국회 열린민주당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닌가?”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을 만들었다.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