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핼러윈데이를 맞은 이태원엔 초저녁부터 많은 사람이 몰렸다. 큰길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해밀턴 호텔 북서쪽 좁은 골목에 이르러서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마치 깔때기에 물을 붓듯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려 좁은 골목을 지나가기 힘들었다.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은 서둘러 현장을 떠났지만, 인파에 떠밀려가며 핼러윈데이를 즐기는 이들도 있어서 현장 사정은 점점 더 나빠졌다. 더구나 좁은 골목이 경사로인 데다 밑을 내려다보기도 어려운 사정이어서 그냥 떠밀려가는 자경이었다.
그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좁은 골목이 위험한 형편인데도 현장에서 인파를 조절하거나 흐름을 막는 경찰관이나 안전관리자는 없었다. 당일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 시위가 있어서 거의 모든 경력이 시위를 막고 대비하는데 동원되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현장 교통 상황을 관리하는 공권력이 없으니 사람들은 계속 큰길에서 몰려들었고 좀은 골목을 지나는 인파 가운데 누군가 넘어지면서 뒤따르던 사람도 넘어지고 비명이 나왔지만, 뒤에서 다가서는 사람들은 현장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밀고 들어갔다.
흥청한 분위기 속에 앞에 가던 사람이 짓밟혀 죽어가는 비명조차 장난으로 받아들여 오려 ‘영치기 영차’를 부르며 밀어붙이는 일도 있었다. 그 허술한 현장에서 아까운 생명 159위가 스러지고 195명이 다쳤다. 그 가운데 62명은 외국인이었다.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고 세계에 나라 망신을 시켰는데도 그 아픈 일에 대한 책임지는 자가 없었다. 이 정부가 들어서고 반년 만에 일어난 그 사고는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생명은 각자가 알아서 지키고 공권력은 정권만 지키겠다는 신호였다.
2023년 6월 29일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 발의되어 8월 31일 행안위 의결과 법사위 회부를 거쳐 2023년 11월 29일 본회의에 부의되었고 2024년 1월 9일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특별법에 따른 특별조사위원회가 고발이나 감사 요구에 따라 행안부장관이나 경찰청장이 댜시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윤 대통령은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법률 거부권을 행사하여 피해 유족들을 다시 한번 실망하게 했다.
지난 9월 30일 이태원 참사 관련자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있었다.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에게 금고 3년과 관련자 3명에 유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와 서울 경찰청장 등 관계자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5월 2일 총선에 참패한 여당이 참여하여 이태원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에 따라 9월 1일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위원들이 임명되고 9월 23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특조위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지원이 부실하여 성과를 낼지 미지수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26일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하여 참사 책임자 처벌과 특조위 활동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태원 참사가 인재라는 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참사 책임자는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며 특조위 활동 지원을 약속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이후 정부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으나, 특별법 통과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 일부 보수 세력은 유족들의 슬픔을 공감하기는커녕, 조롱하고 어떤 무리는 ‘간첩이 조종했다’는 악담까지 퍼붓더라고 호소했다.
사고 당시 함께 있던 친구를 잃은 고등학생 이재현 군은 친구를 잃고 괴로워하다가 49일 후인 2022년 12월 12일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 군의 어머니는 “그 아이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하고 싶었지만 못했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서야 그 심경을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참사 이후 2년이 흘렀지만, 재판을 통해 면죄부만 주어지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유족과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분명한 책임소재를 가려내는 일,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 확실한 제도적 장치 마련, 그리고 정부의 올바른 태도다.
국민은 안전한 나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원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부산 범어사를 방문해서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라며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민의힘 유승민 의원은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온 나라가 김건희 여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대통령과 남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이 없었다고 대통령의 무능을 개탄했다.
지지율 20%에 국정 수행 부정적 평가 70%인 정부가 여당이 참여하지 않은 모든 법률을 거부권으로 되돌리는 악순환만 거듭하고 있다. 하는 일이라고는 심심하면 대통령 내외가 해외 순방에 예비비까지 써가며 막대한 국고를 탕진하는 짓이다.
이제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변해야 한다. 국민 관심을 돌리기 위해 러-우 전쟁에 동원한 북한 병사를 공격하여 북풍을 만들자는 여당의원의 위험한 발상도 나왔다. 지금은 민생을 살피고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문제를 풀 방안에 전력을 기울일 때다.
정권 시작 6개월 만에 터진 이태원 참사 대응에서 보여준 이 정부의 ‘대 국민 인식’은 2년이 흐른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늘 ‘나라와 국민을 위해’라면서 실제는 국민이야 죽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국민 인내가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