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이라는 괴물”
“식탐이라는 괴물”
  • 김규원
  • 승인 2024.10.07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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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80

 

 

 

나는 아침부터

내 남편에게 독약을 먹였다

 

고혈압에 고지혈증에도 고기를 먹어주는 게

고상하고 고답한 생태학적 고품격이라며

삼시세끼 초원에서 단식투쟁한다

 

의사의 경고 따위,

배둘레햄이 풍만한 인격 따위,

그러다 덜컥 청상과부 된다는 아내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거룩한 식탐이라니

 

그의 투정과 독설을 달랠 길 없어

오늘 점저에도 독약을 먹일 수밖에,

나의 반쪽에게

졸시삼겹살전문

요즈음에는 모두가 의사라고 할 정도로 의학 지식이 풍부하다. 현대인 치고 의학지식에 문맹인 사람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떤 증세에 대하여, 원인과 치료법과 복용할 약품까지 줄줄 외워댄다. 그 지식 그 정보가 옳은 것인지, 제 몸의 안경처럼, 제 몸에 맞는 처방을 주변에 무리하게 설파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계제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정보의 일상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공중파에서도 매주 정기적인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그게 시청자들의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다투어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이 방영된다. 공중파뿐만이 아니다. 1TV, 유튜브는 물론, 건강 정보를 전하는 의사들의 동영상도 넘쳐난다. 그래서 인터넷만 연결하면 어떤 증상에는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훤히 알려준다. 그리하여 온 국민 의사시대요, 온 나라 건강열풍시대다.

 

우리나라 돼지고기 수입량이 세계 으뜸이라고 한다.(한국농어민신문24.07.19-“상반기 돼지고기 수입 역대 최대’”) 그 중에서도 특히 삼겹살수입이 세계 최대라고 한다. 세계인들도 의아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경제 부흥을 이루어 선진국 대열에 들었는데, 삼겹살을 좋아하는 식습관을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일 때면 '찬밥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굶주림을 면하고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면 건강상 안정된 식품을 선택하는 것은 모든 이의 공통된 바람일 터이다. 그런데 한국-한국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삼겹살이 나쁜 식품이라거나, 삼겹살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식습관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소하게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면서, 하루 고단했던 노동의 피로를 달랬던 풍속은 서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겹살을 지나치게 선호해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지도 모르고 식탐에 몰입하는 경우가 문제라는 점이다.

 

하긴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식욕이며, 가장 오래 기억되는 체험이 음식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유기체인 우리의 몸은 뭔가 먹지 않으면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 일부러 식탐을 부리는 게 아니라, 먹고자 하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생명작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음식 맛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명을 유지하는 작용이니 그럴 것이다.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 가장 즐겁게 음식을 즐겼던 추억, 몸과 마음을 충족시켰던 행복감이 오래 남아 있는 것 역시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삼겹살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우리들의 기억 인자가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관심은 언제나 정도의 문제다. 건강관련 TV프로그램에서 목격한 일이다. 40대 중반의 부부가 있다. 남편은 세끼 모두 고기가 있어야 밥을 먹는다고 고집한다. 그 중에서도 삼겹살에 반주를 걸치는 게 최고 메뉴다. 풍채도 건장하고, 인격에 비례(?)한다는 복부의 팽만도도 보통은 넘은 듯이 보인다. 급기야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일처리 능률이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병원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의 식습관을 경청하던 의사가 그런다. 각종 검사 데이터가 표시된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식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다가는 얼마 못가서 부인을 청상과부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환자를 각성시키려는 경고조의 질책이었을 것이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식탐食貪의 문제다. 식탐은 과식과 편식을 부르고, 필연적으로 운동부족을 초래한다. “배부른 짐승은 더 이상 먹이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점점 비만도가 높아지고 있다. 2023년 성인의 평균 비만율이 32.5%이고, 30대 남자의 비만율은 51.4%이며, 전반적으로 남자의 비만율은 40.2%로 여자의 22.1%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질병관리청>23.10.18) 외국의 사례를 보면서 안도할 때가 아닌 듯하다. 지나친 비만으로 거처하던 방문을 통과할 수 없어 창문으로 크레인을 이용해서 병원 행을 했던 토픽을 보며, 자신의 비만을 위로할 단계가 아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70%가 비만의 기준을 아예 모르거나 관심조차 없다고 다른 매체는 전한다.

 

결국 문제는 식탐이다. 불가에서는 탐진치貪嗔痴삼독三毒이라며 경계하라고 한다. 식탐 역시 이 삼독과 관련이 깊다. 식탐은 그것이 지나친 탐욕인 줄도 모르고 탐닉耽溺한다. 아니 설사 그걸 알면서도 그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유혹하는 게 식탐이다. 그래서 어리석음에 빠지고 마는 것, 그게 인간의 맹점이다.

 

나의 반쪽의 투정과 고집, 거룩한 식탐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부인의 심정이 드러난 역설과 반어가 나의 노탐老貪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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