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거부는 '국민 무시'
특검 거부는 '국민 무시'
  • 전주일보
  • 승인 2024.05.2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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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28일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사망과 관련 수사외압에 대한 특검법이 국민의힘 반대로 무산됐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한 해병 용사의 억울한 죽음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대통령을 지켜야 자신들이 산다는 생각에만 몰두하는 한심한 국회의원으로 남기를 자처했다. 거수기에 불과한 식물 국회의원 역할로 21대 국회 마지막 의사 일정을 마무리했다.

겉으로는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 단독으로 추진한 특검법이 야당이 단독처리한 법이고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독소조항이라고 우기는 내용을 보면 야당이 여당과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천한 검사를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이유가 그럴듯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엉터리 주장에 불과하다. 채 해병 사건에는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쉽게 말하면 여당의 주장은 피의자가 자신을 수사할 검사를 자신이 선택하겠다는 것이니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더불어 여당과 대통령은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특검을 진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공수처 수사를 지켜본 이후에 수사 내용이 부실하다면 그 이후에 특검을 하자는 주장이다.

현재 공수처 검사 3~4명이 채 해병 사망 관련, 수사외압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숫자여서, 정상적인 수사를 한다 해도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법조인들은 적어도 15명 이상의 검사를 확보해야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더욱이 이 사건은 대통령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만큼, 현재의 공수처 환경에서는 정상적인 수사를 이어갈 수 없다.

28일 한겨레신문은 윤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순직사건’조사 결과가 경찰에 이첩되던 날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세 차례 직접 전화를 걸었던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당시 이 장관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사건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하기 전날이었다고 한다.

한겨레가 확보한 통화기록을 보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일 개인 휴대전화로 우즈베키스탄에 출장 중인 이 장관과 4분5초간 통화했다.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사령관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북 경찰에 수사자료를 이첩한 지 17분 후였다.

윤 대통령은 또 36분 후에 13분 43초간 통화했고 14분 후인 낮12시 57분에도 이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 통화가 이어지던 낮 12시 45분에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보직해임 통보를 받았다.

한겨레는 윤 대통령이 이 사건에서 여러차레 개입한 흔적을 찾아내서 보도했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극렬하게 국회가 특검을 통해 이 사건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자꾸만 미루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에 적시한 대로 공수처는 대통령 개인 핸드폰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 이력을 파악하고도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 등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통화 내력을 알고도 수사하지 않은 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누가 믿겠는가?

이번 '채 해병 특검법' 재의결 무산으로 수사외압의 진상 규명은 한동안 늦춰질 수밖에 없어 보이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정치적 타격도 불가피해 보인다. 일단 위기를 넘긴 것 같지만 22대 국회에서 재추진되는 만큼 오히려 더 큰 부담만 안게 됐다.

더욱이 국민 10명 중 6~7명이 특검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대통령 지키기를 강행한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통령 입장도 마찬가지다. 우선은 잠시 한숨 돌리게 됐지만, 향후 정국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특검법 재의결 부결에 대비해 22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채 해병 특검법을 재발의하겠다고 공표했다. 특히 22대 국회는 특검에 찬성하는 범야권 의원이 192명이다. 여당에서 단 8명만 이탈해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여당은 민심을 이반 한 정치적 후폭풍과 대통령이 멋대로 거부권을 행사한 잘못까지 함께 떠안은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이 명확한 사유도 없이 반복해서 거부권을 행사한 일은 벌써 10번 째다.

여기에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즉각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여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8일 표결 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 헌신하신 장병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수사 과정의 외압, 사건 조작의 의혹을 규명하자는 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극렬하게 반대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선 이미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탄핵 요건이 성립했다고 보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저항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거부권 행사와 재의결 방해가 불러올 파장은 이처럼 심각하다.

지금껏 막무가내 정치로 국민의 신임을 잃은 채 다시 강수(强手)를 연발하는 윤 대통령의 억지 정치가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치는 종식되어야 한다.

점점 더 국민과 멀어지는 정치, 국민의 뜻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한 행동이 가져올 파장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 압력을 과연 무엇으로 감당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국민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정의롭고 정당한 국민의 요구가 대통령과 일부 정치세력(국민의힘)에 의해 무시되는 비상식적인 일이 멀쩡한 백주에 국회에서 합법인 듯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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