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른 재표결이 시행된다. 소위 ‘VIP격노설’을 새삼 재조명해보는 이유는 대통령이 한 병사가 부실한 명령을 따르다가 희생된 일을 ‘사소한 일’쯤으로 치부하는 건 아닌가 해서다.
‘VIP 격노설’은 지난해 7월 31일 아침에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경찰로 이첩한다’라는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화를 냈다는 내용을 말한다.
대통령이 화를 내자 대통령실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 등이 나서서 ‘이첩 보류’ ‘기록 회수’ ‘재검토지시’ 등 불법적 행위를 잇따라 저질렀고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이에 불복하자 ‘명령불복종’ 혐의로 처벌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다른 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대통령이 격노한 가운데 했다는 말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라는 대목을 생각해본다. 한 병사가 본연의 임무도 아닌 수해 지역 지원사업에서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급류에 들어가 수색하라는 명령에 따랐다가 희생된 일이다.
한 사병이 부실한 명령(안전조치 없는 수중 수색)에 따르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 일을 하찮은 ‘이런 일’로 치부한 대통령의 생각이 퍽 위험하다는 걸 지적하는 것이다. 일개 사병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뜻이 아닌지 궁금하다.
사병의 목숨과 사단장의 목숨은 값이 다르다는 말인가? 하긴 그렇길래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에도 대통령과 정부는 만만한 구청장 정도에 책임을 씌우고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 사소한 목숨이었기 때문일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나름 사내답게 군 생활을 하겠다고 해병대에 지원한 장본인 채수근 상병의 목숨 따위는 사단장의 자존심만큼 무게도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들 만만한 목숨들이 준 한 표, 한 표가 모아졌길래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오늘이다.
사단장과 측근의 목숨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이번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았어야 옳다. 이제 21대 국회는 그 마지막 안건으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상병 특검법안에 대한 재표결 절차를 진행한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채상병 특검법’ 재의결을 두고 여야가 ‘통과’와 ‘저지’를 목표로 치열하게 대립 중이다. 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동참을 요구하고 여당은 당론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특검법을 대통령이 끝내 거부권을 행사한 이일은 정치적인 이슈로도 큰 비중을 지니고 있다. 대통령이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되던 수사를 힘으로 눌러 기록을 회수하고 사건 내용을 뒤바꿨다는 의혹이 제기된 엄청난 사건이다.
사건이 발생한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군 호명면 내성천 보문교 일대는 폭우로 불어난 급류 때문에 실종 민간인 수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장 지휘관은 수중 “수색이 어렵다”라고 수색 중단을 요청했지만, “그냥 수색해”라고 지시한 후 체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은 사건을 조사하여 해병대 1사단장 등 관련 지휘관의 과실을 밝힌 수사기록을 해병대 사령관과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재가를 얻어 경찰에 이첩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격노’가 있은 직후 경찰에 이첩했던 수사기록을 회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사건 경과와 내용에서 책임질 인물이 사라진 채 사건 기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박정훈 수사단장이 불복하자 해임되고 외려 ‘명령불복종’으로 재판정에 서게 됐다.
박 대령이 형사사건 피의자로 지목된 죄목은 집단항명 수괴(7년 이상의 징역형)와 항명(3년 이하 징역) 및 상관 명예훼손 등이다. 이런 일이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공공연하게 만들어지고 있으니 독재화하는 나라로 지목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행되자 민주당은 정부 고위층이 개입하여 사건을 왜곡한 것으로 보고 특별검사 임명을 통해 밝히기로 했다. 소위 ‘채 상병 특검법안’을 국회에 상정하여 여당의 반대 속에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해 정부에 이관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서 28일 재의결을 앞두고 있다.
국회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2/3 찬성이 있어야 가결되는 28일 재의결 전망은 부결 쪽에 기울어 있다. 국민의힘에서 찬성 17표가 나와야 가결되는데 이미 ‘일사분란한 반대’로 당론을 굳히고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말의 기적을 바라는 건 21대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22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낙선하여 마지막 표결에 참여한다. 그 마지막 표결에서 본인의 양심에 따라 찬성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정도다.
야7당은 이번 재의결에서 실패해도 22대 국회가 열리면 이 사건을 제1호 안건으로 다뤄 다시 특검법을 의결하여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만약 대통령이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의결 재의 결 가능성은 현재보다 커 보인다.
해병대원 한 사람이 희생된 사건이 하찮은 일로 생각하는 ‘이런 일’ 정도로 취급되어 사건 내용이 다르게 만들어졌다면 큰 문제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군인으로 복무하고 싶을 것이며,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고 싶겠는가?
그러므로 이 사건의 내용은 반드시 특별검사를 통해 엄중하고 세밀하게 조사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건의 진실과 그 내용이 명백하게 공개되고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는 일을 명예롭고 귀중한 기회로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