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 신영배
  • 승인 2024.08.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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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신영배 대표기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란 이름 그대로 문서로만 존재하는 회사다. 정부 공문서에 등기돼 있지 않은 유령회사와는 다르게 합법적으로 관공서의 공문서에 등기된 회사를 서류상 회사로 지칭한다.  

지난 시절에는 법인을 설립하려면 자본금 5천만 원 이상에 이사, 감사 등 3명 이상이 반드시 등록되어야 했다. 이 때문에 법인 설립이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012년 다수의 국민이 자유롭게 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설립 기준이  자본금 100원 이상, ‘대표이사 1명이면 누구든지 1인 법인을 만들 수 있도록 상법을 크게 완화했다. 

‘유령회사’는 글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가짜 회사들을 모두 통칭한다. 하지만 페이퍼 컴퍼니는 공부상 적법하게 존재하며 비록 본연의 목적인 사업을 실제 수행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명의상으로는 거래의 주체로서 엄연히 기능한다.
 
만약 페이퍼 컴퍼니가 형식적 주체로서 법률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설립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설령 탈세 등의 불법 목적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외견상 합법 거래의 형태를 갖추고 운영된다. 

이와 함께 페이퍼 컴퍼니가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각종 건설공사를 비롯해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고하는 모든 형태의 입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찰방식은 현장에서 업체 관계자가 직접 금액을 적어내거나 우편 입찰, 또는 전자입찰 등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최근에는 전자입찰이 대세다.   

이처럼 국가·공공단체·정부 투자기관 등의 계약은 전 국민에게 기회 균등·공정성·경제성 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산회계법'에서는 일반 공개경쟁 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는 건설공사나 물품구매 입찰 때,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했으나, 업체들이 공사를 따내기 위한 욕심으로 소요액 이하의 낮은 가격으로 응찰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공사, 지자체 등은 입찰 방식을 변경해 최저가를 선택하지 않고 입찰 예정가격과 입찰 참가자들의 입찰 금액을 종합해 일정 비율의 금액을 낙찰가로 결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입찰 방식은 설계 가격을 기준으로 예정가격이 정해지고 입찰자들의 가격까지 합산하므로 낙찰가를 점치기 어려운 제도다. 그러나 여러 업체가 서로 짜고 일정 수준의 금액을 써내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해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들은 서로 담합에 가담한 업체에 일정 금액을 보상하거나 다음 공사를 양보하는 방법 등을 모색하다가 당국에 의해 업체 간 담합이 적발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낙찰 확률을 높이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등장시켰다. 

특정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사실상 여러 회사 명의로 입찰에 참여했다. 당연히 낙찰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 입찰 시장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실체가 없는 회사가 낙찰한 뒤에 제삼자에게 하도급을 하는 악순환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 때문에 발주처는 낙찰 회사가 서류상 회사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했다. 등록된 기술자들의 4대 보험 가입증명서는 물론 이들에게 지급된 임금대장‧이체계좌 등을 확인하는 등의 적격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 등은 철저한 사전 확인과 실사를 선행하고 낙찰 후에도 재조사를 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물론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입찰에 참여한 관련 업체 모두에게 입찰 참가 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행정 처분을 단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일부 시군, 또 다른 시도에서도 페이퍼 컴퍼니를 가리는 일에 전문 공무원을 배치하는 등 엄격한 적격 심사제도가 이뤄지고 있다. 

페이퍼 컴퍼니의 문제점은 최근 전주종합경기장 철거공사에서도 나타났다. 낙찰사로 선정된 1위 업체에 대해 2위 업체가 1위로 낙찰된 업체가 페이퍼 컴퍼니로 의심된다며 전주시와 전북도, 전주지방법원 행정부에 적격심사를 제대로 해달라는 취지의 이의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2위 업체 관계자는 "전주시가 건설업 등록 기준에 대한 충족 여부 확인을 위해 업체의 기술 능력과 자본금, 시설, 장비, 사무실 등의 자격 여부를 모두 확인해야 함에도 개찰 후 20여 일이 지나서 1위 업체의 사무실 내·외부만을 확인 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페이퍼 컴퍼니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행정이 수반되면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다. 전라북도에 등록된 기술자 수첩 현황과 그 기술자들에게 지급한 임금대장과 임금이 계좌 이체된 내력을 확인하면 간단하다.  

물론 업체에서 개인정보 운운하며 임금대장과 통장(계좌이체) 제시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입찰에 낙찰된 업체가 수주한 공사를 포기하기 전에는 임금대장과 통장 제시를 거부하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발주처 관계자는 개인정보를 구실 삼아 업체가 특정한 공사를 감당할 수 있는 여부를 적극적으로 가려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적격심사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단순하게 등록된 기술자들의 4대 보험 가입 증명서만을 요구하는 것은, 전주시가 암묵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물론 1위 업체가 페이퍼 컴퍼니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이해당사자의 강력한 이의신청이 있었던 만큼 1위 업체의 공신력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심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업체 관계자들의 합리적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부실한 적격심사는 입찰 현장에서 큰 폐해를 끼치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를 시장에서 퇴출할 수 없다.

아무튼 전라북도와 14개 시군 계약 담당 관계자들은 이번 전주종합경기장 철거공사 적격심사를 거울삼아, 적극 행정을 통해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명확한 진위를 가려내 억울한 업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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