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 시민을 생각하는 행정
무더위 속 시민을 생각하는 행정
  • 전주일보
  • 승인 2024.08.0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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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규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벌써 보름 이상 열대야가 이어지고 폭염이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찜통더위에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나날이다. 낮 최고 35℃를 넘나드는가 하면 밤에도 최저 27~8℃의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염천(炎天)을 견디느라 시민들은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다.

기상청은 이런 날씨가 8월 하순까지 이어지고 8월 말께나 밤 기온이 25도 언저리로 다소 내려갈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달 7일이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이고 14일은 더위가 한풀 꺾이는 말복(末伏)이라는데 이제는 절기(節氣)조차 뒤틀려버린 듯 달라졌다.

이런 더위에 열사병 등 온열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 가난한 이들이다. 대부분 가정은 에어컨 빵빵하게 돌리면서 기온이 얼마나 오르는지 알 필요가 없지만, 이 더위에 밖에서 벌어야 하는 이들에겐 이 시기가 지옥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겨울은 추위가 덜해서 외려 견딜만하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서민들에게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금액을 책정하면서 여름철에 14.4%, 나머지는 겨울철에 배당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 의료 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에너지 바우처는 주민등록표 등본상 기초생활수급자(본인) 또는 세대원이 65세 이상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중증질환자, 한부모가족, 소년소녀가장에 해당할 경우 지급한다.

에너지 바우처 사용기간은 2024년 7월 1일부터 2025년 5월 25일까지다. 여름철은 7월1일부터 9월 30일까지 사용 가능하고, 동절기 사용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5월 25일까지로 정해있다. 동절기 사용 기간만 길게 설정한 건 불합리해 보인다.

6월부터 9월까지 거의 4개월간 더위가 지속되고, 겨울은 11월부터 3월까지 5개월 정도여서 기후 변화에 적절한 개선이 요구된다. 겨울에 연탄 난방하는 이들만 생각할 게 아니라 개인의 형편에 따라 배정된 액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2인세대 기준 연간 40만 7,500원이 에너지 바우처로 제공되는데 하절기 5만8,800원, 동절기 34만8,700원을 지원한다. 여기에 약간의 편의를 제공해서 여름에 겨울 난방비를 당겨 쓸 수 있는 금액이 4만5,000원이다.

도움을 받는 이들은 나라에서 주는 것이니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실제 효용면에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쓸 수 있다면 더욱 고마울 것이라는 말이었다. 길고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도록 여름철에 더 많은 액수를 당겨 쓸 수 있는 제도가 아쉽다는 것이다.

무더위와 한파를 견뎌야 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정책이 효율을 거두려면 그들이 필요한 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공단의 편의를 위해 책정된 기간과 금액인지 모르지만, 유연한 적용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볕이 드는 날엔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햇살이 강하다. 예전에는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한 기운이 있었는데 요즘은 밤낮없이 덥다. 자가용 차량이 없는 이들은 이 염천을 몸으로 견뎌야 한다.

시내버스에서 내리면 숨이 턱턱 막힌다. 잠시 걷다 보면 땀이 줄줄 흐른다. 스마트 폰으로 재난 안전문자가 뜨지만, 안내대로 쉴 수 없는 이들의 사정이 있으니 한낮에 거리에 나간다. 이런 때 가끔 시원한 얼음덩이를 놓고 행인들의 더위를 삭혀주더니 요즘엔 볼 수 없다.

시민을 위하는 행정이라며 온갖 제도와 방법을 시행한다지만, 이 더위에 거리에 나서야 하는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시내버스 승강장에 웽웽거리는 송풍기인지 하는 기계가 있지만, 한 더위에는 그 바람도 뜨겁다.

언젠가 여름철에 서울 성동구 시내버스 승강장에 들어갔더니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어서 더위를 식힌 적이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는 시내버스 승강장은 휴대전화 충전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정원오 구청장의 행정 자세는 시민을 위한 봉사자로 인정되었다. 지난날 지방선거에서 성동구민들은 국민의힘 오세훈 시장에게 표를 주면서도 구정창은 민주당 정원오 구청장을 선택했다. 결과 국민의힘 후보에 비해 15% 이상 득표 차이를 보였다.

정원오 구청장은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구청에 나가서 출근하는 직원들을 맞이하고 시민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해 따로 시간을 마련한다고 한다. 서울시에서도 성동구 사업은 우선 해결해줄 만큼 구청장의 신망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구호만 요란할 게 아니라 당장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 무엇인지 살피고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는 게 좋은 행정이다. 아직도 8월 한 달과 9월까지 더위를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배려하는 행정이 아쉽다.

예산 타령을 할 게 아니라 불용예산으로 해를 넘기는 예산만 모아도 시민을 위한 시설들을 차츰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시설이나 사업명 따위는 실제 시민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업적(業績)보다는 시민의 작은 편의를 앞세우는 좋은 행정을 기대한다.

잘 벌어서 잘 쓰는 이들을 위한 행정, 공무원 편익을 위한 행정에 힘쓰기보다 이 여름을 견디느라 지치고 힘겨운 이들을 위해 작은 배려를 생각하는 행정이 아쉽다. 가끔은 시내버스를 타고 시민들과 함께 걸어보는 단체장도 보고 싶다.

서늘한 에어컨 아래서 시민불편을 알아낼 수는 없다. 선거 때에 시민과 약속하던 마음으로 한 낮 더위를 체험하러 나서보는 단체장은 없을까? 거리에 나서보면 너무 할 일이 많고 살피지 못한 점이 드러날 것이다. 오늘도 낮 최고기온이 35℃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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