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사단법인 천년한지 대표](/news/photo/202502/303262_152879_2036.jpg)
설 명절 뒤끝. 낯익은 얼굴에 인사했다. “지사님 아니세요. 건강하시죠. 많이 궁금했었는데요.” 반갑게 대한다. 김완주 전 전주시장·전북도지사를 우연히 만났다. 얼굴은 약간 수척하지만, 맑은 눈은 예전 그대로다. 가끔 들르는 동네 목욕탕에서 벌써 두 번째다.
민선 전북도지사로는 유종근(1,2기), 강현욱(3기)에 이어 3번째 지사(4,5기)다. 그 뒤 송하진(6,7기), 김관영 현 지사가 이어받았다. 민선 다섯 분의 도지사 중 크고 작은 일화를 많이 남겼다. 그리고 전임지사들과는 달리 퇴임 후도 서울로 뜨지 않은 유일한 ‘전북 지킴이’다.
“도청 공무원들 이제 잠 못 잘 거여∼” “그동안 편히 살다 일벌레 김완주 땜시 힘들걸” “전주시는 콧노래다네.” 전북도청 주변에선 불만이 쏟아졌다. 전주시장 8년하고 도지사로 옮겨 갔을 때 공무원들이 힘들어한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도청사에는 늦은 시간까지 불이 커져 있었다.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불도저였다.
도지사 김완주 표 사업은 작은 목욕탕·영화관·도서관 등 일명 ‘작은 시리즈’다. 또 ‘아름다운 순례길’ 9개 구간 240km. ‘다문화가족축제’ ‘중고생 해외어학연수’ ‘전북인 자긍심 캠페인’ 등은 소소하고 섬세하다. 정부 정책의 빈틈을 메꾼 마이너 전북만의 ‘틈새 사업’이었다. 중앙정부에서도 베껴갔다. 문화와 복지프로그램에선 단연코 으뜸이었다.
하지만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합병으로 진주로의 LH공사 이전은 ‘삭발투쟁’에도 불구하고 쓴맛을 삼켜야 했다. 또 쌍방울 프로야구단 후속으로 Kt야구단을 유치하려 노력했지만, 이 또한 수원에 밀리고 말았다. 동분서주했다. “못 마시는 술 마시고 들어와 밤새 토하고 우셨데야∼. 젊은 기자들 상대하려. 그때마다 사모님이 안절부절하고.” 지인 이야기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결단력 있다. 아이디어가 번쩍였다.
전주시장 시절 대표 사업이 한옥마을. 풍남동·교동 일대 쓰러져가는 한옥에 활력을 넣었다. 일본 가나자와(金澤)와 자매결연 후 벤치마킹했다. 지금의 ‘전주한옥마을’ 탄생이다. 전국에서 가장 멋진 전주월드컵경기장. 미래먹거리로 전국 유일의 탄소산업을 유치했다.
지난해 부산으로 옮겨간 KCC농구단도, 대전에서 여수로 갈 것을 전주로 가져왔다. 전주천도 콘크리트 에서 자연친화형 하천으로 탈바꿈시켰다. 수달이 사는 하천이 됐다. 시장 전용차량도 중소형의 작은 아반테를 고집했다. 딸 혼인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기존의 공무원 출신 장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단아였다.
김완주는 임실 관촌 출신에 전주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엘리트다. 행정고시 후 관선 고창군수와 남원시장을 역임했다. 당시 가난한 남원시에 시립국악단을 만든 것도 지역 정체성을 헤아리고, 찾아내는 뛰어난 감각이라 할까.
「그의 뛰어난 장점은 지혜나 판단력, 혹은 선견지명보다는 정력에 있었다.」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의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자서전에 나오는 말이다.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던 김완주의 정력. 처칠의 정력과 크기만 다르지, 뒤지지 않았다.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 거대 농업주다. 주도 쿠리치바(CURITIBA). 인구 190만의 생태도시. 세계 환경도시다. 많이 소개됐다. 이미 이명박·박원순·오세훈 서울시장이 다녀왔다. 최근에는 수원·고양시장도 방문했다. 일부 비판에도 BRT(간선급행버스)와 도시의 커뮤니티 센터가 된 ‘지혜의 등대’ 작은 도서관이 유명하다. 여기에는 ‘레르네르’나 ‘크레카’ 같은 오로지 지역사랑 시장이 있었다.
스페인 바스크지방 빌바오. 철강과 석탄 산업 쇠락으로 무너져가던 도시에 구겐하임미술관 유치로 세계인들을 불러들이는 마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충북의 ‘고려인 이주지원 조례’, 전남 신안의 바람·태양 연금, 강진의 빈집 개조 마을호텔. 등 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역시 사람이다. 결국 리더가 한다.
리더십은 방향성이다. 시장, 지사, 그리고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저 크기만 다를 뿐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 어려운 시절 어느 쪽을 향하고, 견인하는 바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물며 진정한 리더십은 ‘함께 나아가는 여정’이다. 지금 전주·전북에는 보여줄 게 없다. 목표가 어리바리하다. 베끼기도 못한다. 주구장창 30년 세월 넘겨 새만금에, 2036전주올림픽 유치라니∼. 방향이 어긋나도 한참이나 벗어났다. 구태의연하다.
카오스(Chaos)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양대 전쟁. 윤석열의 계엄 내란, 트럼프의 마가(MAGA)-관세전쟁으로 난리다. 북극 한파가 왔다. 불가항력(不可抗力). 각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쓰나미다. 계속해서 죽어 나간다. 사이비 담론 속에 작은 개미들은 그냥 떠내려간다.
유독 길거리 ‘임대’ 간판만 눈에 띈다. 강추위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 지역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언제나 함께하는’ 자상함이다. 난세(亂世)다. 난세에 영웅 난다. 초인이 기다려지는 시대다.
몇 마디 나눈 후 헤어지는 김완주 지사. 눈망울. 참 맑다. 눈이 맑은 사람 김완주. 간난(艱難)한 겨울. 그나마 전주에 함께 살아 참 고맙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을 만들었다.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