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정치가 엉망이라는 건, 지난 2년 동안 충분히 겪어보아서 대다수 국민이 다 안다. 아까운 젊은이가 잘못 내려진 명령에 희생되었는데 그 명령자를 처벌하지 못하게 갖가지 방해와 변조를 일삼은 세력이 날뛰는 무법천지인 대한민국이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사건 청문회가 열렸다. 출석한 증인들은 중요사항에 대한 국회의원 질문에 수사 중인 사건이어서 대답할 수 없다는 식으로 모두 회피하고 청문회는 하나마나한 정치쇼만 구경시키고 말았다.
특검법이 다시 가결돼도 거부권으로 집어 삼키면 그만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정권의 주역들이 온갖 해괴한 사건에 연루되어 시끄러운데 누구하나 법에 의한 처벌은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을 신고한 데 대해 공직자 신분이 아니라며 ‘위반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이런 기준이라면 공직자 부인들에게 고액 선물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청탁금지법에는 공직자에게 선물하는 경우 본인이나 부인, 가족에게 전달해도 공직자가 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처벌 대상이 된다.
국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기관이 스스로 법을 외면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듯한 해석을 하고 있으니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셈이다. 법이 권력에 의해, 권력을 위해 멋대로 적용하고 해석하는 나라, 그래서 14위였던 민주화 지수가 48위로 떨어진 나라 대한민국이다.
이처럼 법률 해석과 적용, 권력의 일탈만 문제가 아니다. 나라 살림의 근간인 재정 관리도 자꾸만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하여 법인세 수입이 크게 줄어들어 세수적자로 나라 재정이 어려운데 정부는 자꾸만 부자들의 세금을 줄이느라 궁리한다.
부자들, 어떤 수단으로 벌어들였는지 모르지만, 대개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은 막무가내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수입이 많고 재산이 넉넉한 편이다. 그들을 위해 정부는 ‘부자 감세’ 정책에 심혈을 기울인다. 세수가 줄어 나라 재정이 어려워지는데도 세금을 줄이려 애쓴다.
기업 실적 부진으로 법인세 수입이 크게 감소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엄청난 규모의 '세수펑크'가 불가피하여 국세수입 감소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폐지를 비롯한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올해 법인세는 지난해 저조했던 기업 실적이 반영돼 4월까지 전년 대비 13조 원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1~4월 전체 국세 수입도 8조 원 넘게 감소했다. 4월 한 달에만 6조원 넘게 국세 수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4월 국세수입 현황'을 보면 1∼4월 국세수입은 125조 6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조 4000억 원 줄었다.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4월 한 달간 국세수입액이 40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6조 2000억 원이나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세수가 줄어 재정적자를 메우느라 나라빚을 냈는데 올해도 재정적자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종부세를 폐지하고 상속세와 증여세 세율도 낮추려고 궁리하는 모양이다. 부자들이 좋아할 세금 감면이다.
국민의힘은 올해 1호 법안으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와 관련해 발생한 양도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세금을 말한다. 증권거래세를 인하하고 2025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금년 1월, 윤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했고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도 금투세 폐지를 공약했으나 총선에서 참패하여 국민이 원하지 않는 약속임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여당은 다시 금투세 폐지 법안을 추진하지만, 야당이 반대하여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뜻이 뭐라든 내 맘대로 하겠다는 정부와 여당,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 정국을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대결 구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답답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인인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이루어지는 데에 있다.
나라 정치가 이런 파행을 거듭하는 가운데 우리 전북의 행정도 정부 못지 않은 난맥상을 보이고 있어 도민의 가슴은 물 없이 고구마를 먹은 듯 갑갑하다. 며칠전 골프선수 박세리가 부친을 고발하면서 밝혀진 새만금 골프장에 전북도가 놀아난 꼴이 되었다.
그동안 전북은 새만금에 72홀의 거대 골프장이 생긴다고 자랑해왔는데 그 내용이 바로 박세리 아버지가 박세리 재단 명의를 도용해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라북도와 새만금 관리청은 사업추진 실체도 모른 채 떠벌린 셈이다.
허술한 행정은 곳곳에서 물 새는 바가지처럼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모든 사안에서 그럴듯한 내용은 침소봉대로 부풀려져 언론에 노출하고 그것을 받은 언론은 대문짝만하게 선전하는 시스템이 상시화하여 꼴불견을 연출한다.
언론은 문제점을 찾아 지적하고 시정하게 하는 역할보다는 홍보 매체로 역할에 충실한다. 그래야 홍보비 집행에 끼어서 광고를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일부 제도권 신문과 방송에 한정하여 군소 매체들은 들러리에 만족하고 있다.
중앙 행정이나 지방행정이 이처럼 난맥상을 보이는 이유도 유착된 언론이 그저 나팔수에 만족하고 문제를 짚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쉬쉬 덮어둔 일들이 시민단체나 일부 언론에 의해 정보가 새어 나오지만 그 역시 일부만 아는 일로 덮어져 버린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유착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하다. 정부나 지방이나 숱한 문제들이 겉으로만 떠들썩하고 물밑에서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듯 유야무야(有耶無耶)로 잊혀지고 만다. ‘국민을 물로 보는’ 정부와 자치단체엔 시원한 몽둥이 찜질이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