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대서(大暑). 벌써 중복(中伏)이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이다. 더운 날 보양식으로 삼계탕, 장어 등 단백질 식품을 서로 권한다. 연일 습도 8∼90%에 30°를 오르내리니 가난한 이들의 고통은 2월 혹한(酷寒)의 한겨울보다 더하다.
“전주 와서 사는 사람은 폐인이여. 돈 있는 사람이 최고지. 돈 없는 사람은 서울로 가야지. 전주는 돈 없는 사람은 힘들어∼” 밥 먹는 자리에서 귓가에 걸린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두고두고 마음에 “쌩∼”하고 맺힌다.
#장면1 – 전주 평화동 ‘ㅅ’사우나. “그제부터 천 원씩 내렸어요.” 주인이 손님에게 친절히 안내한다. “다른 곳들은 못 올려서 난리 도만, 사장님은 왜 내렸어요?” 앞 손님이 반색하며 되묻는다. “우리 동네는 시내하고 달라, 여름이 되면 목욕하러 오는 사람도 많이 줄어요. 더 오시라고.” 전주 시내 대중탕 요금은 오래전부터 9천원 시대다. 그렇지만 이곳은 지난해 겨울, 다른 곳보다 한참 늦게 천원을 올렸다 지난 6월초, 다시 목욕 요금을 8천원으로 내렸다. 지난 2000년 가을에 문 열어, 노부부가 25년 동안 운영해오고 있다.
#장면2 – 전주 중화산동 ‘ㅈ’음식점. 4인용 식탁 7개. 그렇지만 수용인원 20여 명 안팎이다. 삼겹살, 김치찌개, 갈치·꽁치 조림, 그리고 닭백숙까지 단골손님이 많다. 주인이 쉬는 ‘특별한 날’ 빼고는 언제나 꽉 찬다. 점심에는 도와주시는 분이 한 분 있어, 주인과 둘이 손님을 다 받는다. “사장님 열무김치와 이 반찬 좀 더 주세요.” 손님들 요구대로 계속해서 준다. 심지어 누룽지 끓인 밥과 콩나물국까지. “내가 밥 2개 인디 납납허게 갖고 왔어” 주인의 따뜻한 말과 함께 요구하는 음식을 ‘후다닥’ 내놓는다. 삼겹살 200g에 만오천원. 갈치조림 1인분 만2천원 등등이다. 언제나 정량보다 더 많이 준다. 주변 식당보다도 가격이 훨씬 싸다. 먹는 손님들 표정이 행복하다.
#장면3 – 전주 중화산동 ‘ㅍ’빵집.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게다. 주변에 커피숍이 옆집, 앞집, 건넛집까지 무려 5개나 된다. 일행 5명이 식사 후 찾았다. “에스프레소 한잔, 녹차 2잔, 그리고 빵 입가심으로 두 개요.” 주인은 지금껏 해온 것처럼 커피 한잔에 녹차 2잔, 따뜻한 물 2컵을 따로 준다. 사람 수만큼 마실 거를 시키지 않아도 그만이다. 오랜 시간 자리 차지해도 그저 편안한 시간이다. 시중 여느 카페처럼 “1인 1음료 이상 시키셔야 합니다.”도 아니다. 주인보다는 손님 맘이다. 때때로 음료 쟁반에 ‘맛보시라’ 빵을 올려주기도 한다. 부부가 종업원 없이 밤늦게까지 일한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 증가 폭이 두 달 연속 10만명을 밑돌면서 고용시장에도 찬바람이 도는 형국이다. 건설업 취업자 수가 두 달째 감소세를 보였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급감했다. 건설 투자 감소와 내수 부진으로 해석된다. 연말까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폐업자만 해도 100만명으로 수직상승 했다.
내년 최저 임금이 올해보다 1.7% 오른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월급으로는 209만6,270원(209시간 기준)에 해당한다. 역대 두 번째 낮은 인상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올해 경제성장률 2.6%, 소비자 물가상승률 2.6% 예상한다. 2년 내리 노동자 실질 임금이 하락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1만원을 넘겼다는 상징성은 의미가 없다.
또 65살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 국민 다섯명 중 한명이 노인이다. 수도권 17.24%, 비수도권 21.84%. 시도별로는 전남이 26.67%로 가장 높았고, 경북(25.35%) 강원(24.72%)에 이어 전북이 24.68%이다. 사실 경북에는 대구, 전남에는 광주라는 광역시가 있기에 강원, 전북이 사실 꼴찌인 셈이다. 여기에 폐지 수입 노인이 전북에만 698명이다. 전북은 젊지 않다 늙었다. 그리고 가난하다. 굳이 숫자를 열거하지 않아도 도민들은 다 안다.
<이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은 늘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 행정복지센터에 가면 아버지가 진짜 눈이 안 보이는지, 어머니가 교통사고 탓에 정규직으로 일을 못 하는지 늘 확인당했다. 심지어 지원받은 쌀은 진짜 가족이 먹었는지, 이 집에 사는 게 맞는지 되풀이해서 물었다.-‘일인칭 가난’ 안온 지음.>
또 “가난을 1인칭으로 만들지 마라. 1인칭에 가두면 삶을 바꿀 기회가 봉쇄된다.” 전한다. “그 시절 나만 가난하지 않았으니, 주변 사람이 다 가난했다. 가난의 평등은 가난의 트라우마를 이겨냈다.” “가난은 3인칭, 우리 모두의 문제로 삼아야 한다.” 작가가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심각한 질문이다.
무더운 날. 장면 셋이 떠오른다. 가난한 우리 공동체는 삼계탕 한 그릇도 버겁다. 씁쓸하다. 아침 방송 뉴스 하단에 <삼계탕 1만7천원> 자막이 흐른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오로지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