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은 1년전 남원 출신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쓸려가 사망한 날이었다. 폭우 속에 안전장비도 없이 맨손 수색을 명령한 책임자가 분명히 드러나 있는데도 ‘윗선’의 말 한마디에 사건 내용이 변조됐다.
그리고 21대 국회와 22대 국회가 잇따라 결의한 특검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되돌아갔다. 대통령의 거부 이유는 국회 의결이 반헌법적이라는 이유다. 소수당이 반대하는 안건을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인 게 반헌법적이란다. 108대 192 구도는 국민이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를 살펴보면 여야 합의없이 특검법이 시행된 사례가 2003년, 2007년, 2012년 등 세 차례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이 위헌적 특검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한 반론은 분명하다.
국회는 여야 전당대회가 끝나고 8월에는 채상병 특검법을 재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108명이 모두 반대하면 재의결은 또 무산될 전망이지만, 여러 변수가 내재하므로 그 결과를 분명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19일 서울 청계광장의 채상병 분향소에는 해병 에비역들과 시민들의 헌화가 이어지며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는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숨진 채모 상병의 순직 1주기를 맞은 19일 국회에 채상병 순직과 수사 외압에 대해 진상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 정원철 회장은 편지를 낭독하며 "대한민국과 해병대에 충성해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이리 허망하게 가게 됐으니 얼마나 원통했을까"라며 "1년이 지나도록 밝혀진 것은 많은데 책임지는 놈 하나 없는 대한민국과 해병대가 솔직히 환멸스러울 지경"이라며 흐느꼈다고 연합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채 해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검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최고 권력 앞에 번번이 틀어막히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채 해병을 위해서 해병대답게 '안되면 될 때까지' 우리는 싸워가겠네"라고 약속했다.
채상병과 함께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물에 휩쓸린 후 구조됐다는 해병대 동료 B씨는 이날 군인권센터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뉴스에서 채해병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게 나였다면 나는 누굴 원망했을까’, ‘구하지 못한 내 책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고 밝혔다.
B씨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 중인 임 전 사단장 고소 사건의 처리 결과를 기다리고, 무엇 때문에 수사가 이렇게 엉망이 됐는지 박정훈 대령의 재판을 지켜보고, 특검이 생겨서 진실이 밝혀지고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이 가려지길 바라고 있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7일 오전 설치된 이 분향소는 순직 1주기인 19일까지 운영됐다. 이날 오전까지 약 이틀간 시민 약 450명이 이곳을 방문해 참배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치권에서도 우원식 국회의장,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등이 분향소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을 강조했다. 그는 “젊은 해병이 그날 왜 생명을 잃어야 했는지, 누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고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특검은 온전한 진상 규명을 위한 필연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인 한동훈 후보가 ‘제3자 추천 채해병 특검법’을 제안해 여야의 관심이 쏠렸다. 야당이 추천하는 특별검사 대신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별검사를 추천하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7일 CBS라디오 주최로 열린 4차 방송토론에서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는 한 후보의 ‘제3자 추천 채해병 특검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대해 파상공세를 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주장해 온 공수처 수사 종료 후에 미진하면 특검을 하겠다는 당론과 다르다는 것이다.
나‧원‧윤 세 후보는 한 후보가 특검을 하자는 야당의 주장에 동조하여 대통령을 조사하는 데 이르면 야당이 탄핵카드를 꺼낼 것이라며 한 후보를 공격하고 나섰다. 한 후보가 최근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어 대권을 노리는 부분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한 후보는 이 같은 공세에 “채해병 순직 사고는 보수에게 아프다. 진실규명이나 재발 방지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공수처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경쟁 후보들의 입장에 우려를 표했다.
한 후보는 공수처의 수사가 공격적이고 검사들이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이어서 정권에 불리하게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데에 시각을 맞추고 있으나, 그의 심중에는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보다 자신에 유리한 분위기 조성을 노리는 듯싶다.
또 조국혁신당과 기타 야당은 특검법 재의결이 실패하면 대통령 탄핵 카드를 꺼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여야가 채해병 특검법을 보는 생각은 저마다 유리한 조건을 꾸미느라 열심이다. 당초 해병 박 수사단장이 만들었던 수사보고서가 원상을 찾아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
나라 최고 권력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는 이런 나라 꼴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을 일방적인 생각으로 재단하면서 모든 면에서 후퇴를 거듭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하루빨리 제 자리를 찾아야 하고 국민 분노도 차분해져야 한다.
독선과 오류가 반복되는 나라분위기가 3년째 접어들면서 불안하고 주인인 국민의 뜻과는 다른 나라로 변해가는 듯 걱정스럽다. 역사가 그래왔듯 점점 개선되고 좋은 쪽으로 변해가던 나라에 갑자기 후진기어가 걸렸다.
이제 특검을 하든 광장에 나서든 분명한 주인들의 마음이 나라 정치에 바로 자리 잡을 때다. 권력을 추종하느라, 내 잇속을 챙기느라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치인들도 본디 마음으로 돌아가고, 국민은 생업에 몰두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