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은 정의롭다”
아름다운 것은 정의롭다”
  • 전주일보
  • 승인 2021.11.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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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피어나는 것 열댓 번쯤 보았을 처녀애가,

꽃피는 구경 한 번도 못해본 아버지 손을 붙들고

꽃밭엘 나왔습니다.

 

세세연년 수도 없이 피었다 진 꽃들이,

이제 처음으로 피어난 꽃들에게

그 처녀애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머지않아 꽃이 될 처녀애가

아버지 귀에 꽃을 그립니다.

아버지 얼굴에 꽃이 피어납니다.

 

-윤제림(1925~2015 . 충북 제천)심청전전문

 

이 시는 <세세연년 피었다 진 꽃 : 처음 피어난 꽃> ː ②<아버지 : 처녀애>2중구도로 짜여 있다. 그런데 제목이 심청이 아니라, 심청전이다. 그래서 이 시를 그냥 편하게 읽어 넘기려니 뭔가 거치적거리는 미감의 꼬투리가 있어 성가신 느낌이다. 성급하게 그 비밀 아닌 비밀을 밝혀두자니, 시를 시로 읽지 않고 무슨 윤리도덕 교과서로 읽으려 하는 것이냐는 지청구가 들여오는 듯하다. 그래도 그 지청구를 못들은 척하고 성급한 비밀을 밝히면 그렇다.

만물이 피고 지듯이 인생도 그렇게 피고 지는 속에서 가장 어여쁜 것은 역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에서 세세연년 피었다 지는 꽃으로 세상은 연락連落한다. 이어지는 듯하지만 마침내 끊어지고야 마는 것이 생명의 이음법칙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세세연년 피었다는 지는 일 뿐이다. 그런 꽃이 아니고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세연년 피었다 지는 꽃이 올해 처음으로 피는 꽃들에게 알려준 처녀애의 이름은 그러므로 심청이 아니라, 바로심청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처녀애의 실체 이름 심청보다 심청전에 담긴 그 애절하지만 절절한 효심-효성의 본질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처음으로 피어 아직 꽃이 되어보지 못한 처녀애는 자신을 바쳐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는 것이다. “머지않아 꽃이 될 처녀애가 아버지 귀에 꽃을그리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니라 바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처녀애]’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딸자식의 효성을 받는 사람[아버지]이 비록 눈이 멀었을망정 육신의 한을 넘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얼굴에 꽃이피어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사랑의 범주는 넓고 또한 크며, 높고 또한 깊다. 사랑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보다 아름다운 꽃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런 사람만이 이 시의 어법에 가 닿을 수 있다.

의 구조는 사실은 군더더기일 따름이다. 에서 이미 이 시의 속내를 드러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지 귀에 대고 꽃을 그리는 처녀애를 통해서 비록 눈먼 아버지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다. 어찌 이 시대에 드문 심청이를 찾을 것이며, 어찌 자꾸만 흐려져 가는 눈 뜬 장님 아버지가 이런 [얼굴]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아름다움과 행복의 함수에서 모든 아름다운 것은 정의롭다는 소크라테스의 정의를 자꾸만 외면하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패덕悖德이 횡행하는 시대요, 자식이 부모를 물질의 공급원으로만 치부하는 패륜悖倫의 세계로 치달려가는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에서나 찾음직한 도리道理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심청이 아니라심청전으로 제목을 삼은 이유를 알겠다. 시로 서정의 미감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자꾸만 거치적거리는 시대의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을 시작 상황이 어른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녀애는 머지않아 꽃이 될것이라고 했다. 저 혼자, 눈먼 아버지를 외면하고 피어나야 꽃이 아니라, 바로 눈먼 아버지의 귀에 대고 꽃을 그려낼 수 있는 효심이라야 비로소 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자식을 둔 부모라면 그래도 구원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자식도 자꾸만 귀해가는 시대이지만, 봄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눈 뜬 장님 부모도 자꾸만 늘어가서 두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육신의 눈만 먼 것이 아니라, 영혼의 눈을 감고 사는 부모들에게서, ‘심청같은 꽃이 피어나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봄은 봄이로되 봄 같지 않은 시대, 꽃은 꽃이로되 향기 없는 꽃만 지천인 시대가 바로 우리의 시대일 수 있다니!

눈먼 아버지의 귀에 대고 그리는 꽃을 그리는 처녀애가 존재하는 한 인생의 봄은 세세연년 봄을 맞아 새 꽃을 피우고야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이건 효자 효녀는 있기 마련이고, 어느 시절이건 불효자 불효녀는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시대와 시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사람됨의 참된 미의식이 자리 잡고 있느냐의 것이다.

굳이 현자의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이 진정 참된 정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아름다움이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심어두는 일이 급선무다. 아름다움 자리에 대신 들어선 허접쓰레기들이 소중한 시대와 시절을 더럽히고 있다. 우선, 시 한 구절이라도 담아두는 마음자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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