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휴일에 친구와 내소사를 거쳐 변산 관음봉을 등산할 목적으로 내소사에 갔다. 입구 매표소에서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1인당 3,000원을 받고 있었지만, 부안군민에게는 무료인지라 “지역주민입니다”라며 통과를 하려 했으나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신분증을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등산로 입구에서 관람료인지 통행세인지를 받는 일이 못마땅했던 차에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지금 당신이 내게 신분증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걸 아느냐?” “당신이 사법경찰도 아닌데 신분증을 요구하는 건 불법이다”고 나무라며 신분증을 보여줬다. 사실 경찰도 법원의 영장 없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같이 간 친구의 신분증을 보자고 트집을 잡았다. 그의 태도는 한마디로 ‘완장’을 찬 모습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오랜만에 나선 등산을 위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등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평소에도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일이 불편했던 터라 이 사안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결과, 그들의 관람료 징수가 대부분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고 자치단체와 정부가 종교단체의 표를 의식해 어물쩍하게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불합리한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
우리 문화재 현황을 보면 국보 336건 가운데 177건, 보물 2,146건 가운데 1,262건이 불교계에 있다. 국보와 보물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이처럼 많은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행위는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보유한 문화재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들 것이므로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전국의 사찰 가운데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곳은 지리산 화엄사를 비롯한 14개 사찰이다. 도내에서는 내장사와 내소사가 관람료를 받는다. 문제는 이들이 관람료를 문화재 앞에서 관람하는 사람에게만 받는 게 아니라 등산로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고 절에 가서 문화재를 관람하든 말든 일률적으로 받는 데에 문제가 있다.
사찰과 상당히 떨어진 곳에 주차장을 만들어두고 주차비를 먼저 징수한 다음에 등산로 입구에 이르면 문화재관람료를 또다시 받는다. 절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등산로로 곧장 가는 등산객에게서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해괴한 행위가 백주에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관람료 문제로 가장 시끄러웠던 지리산 천은사의 경우, 사찰에서 1㎞ 떨어진 지방도로 옆에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자리에 매표소를 설치하고 1,600원을 통행료처럼 받았다.
이에 분노한 등산객들이 부당한 통행료 징수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법원은 관람료를 되돌려 주고 10만원의 위자료를 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 뒤에도 천은사는 계속해서 문화재관람료를 받았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판결의 효력이 없음을 악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관람료라는 이름을 ‘공원 문화유산지구 입장료’라고 바꾸어 징수하는 편법도 썼다. 그러다가 천은사는 지난 2019년 4월 말에 통행료 징수를 포기했다. 지나친 욕심으로 무리한 통행료를 받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항복한 셈이다.
사찰의 통행료 성격인 문화재관람료는 당연히 폐지해야 된다. 부처님을 모시고 수도하는 이들이 사는 사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돈인데 그 돈을 위해 비난도 무릅쓰고 변함없이 관람료를 징수하는 오늘의 사찰 행태를 부처님은 뭐라고 나무라고 있을지….
종교와 정치권의 짬짜미
앞서 지적한 대로 전국 14개 사찰이 징수하는 문화재관람료는 법원의 판결이 말해주듯 부당한 ‘갈취’에 해당할 수 있다. 그들은 사찰과는 무관한 등산로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고 3,000~5,000원을 꿀떡꿀떡 받아먹을뿐 아니라 관리자들의 태도 또한 매우 고압적이다.
관람료를 징수하도록 한 건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선 지난 1962년 이후다. 1987년부터는 국립공원 관리를 위해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았으며 사찰에서는 문화재관람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7년에 국립공원 입장료가 전면 폐지됐으나 공원 내에 자리 잡은 사찰에서는 계속해서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다.
문화재관람료는 나라 재정이 빈약하던 시대에 사찰들이 문화재를 유지관리하고 보수하는 비용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찰이 보유한 문화재마다 관리인을 임명해 보수를 지급하고 문화재 보존 비용도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문화재의 등급과 형태에 따라 보수 비용도 지급되고 있으므로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것은 매우 부당한 행위다.
이런 사실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찰에서 관람료를 받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거나 행정명령 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불교 신도들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불교계라는 벌집을 건드려 쏘이느니 그냥 눈 감고 있는 게 현명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것 같다.
가끔 등산객들과 관람료 갈등을 빚어 재판이 걸리기도 하지만, 천은사의 경우처럼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는 한 방관하고 있는 쪽이 유리하다는 걸 단체장이나 정치인들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조차도 애매하다. 더구나 문화재 곁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관람료를 받는 행위는 상식한계를 벗어난 부당행위다. 그래서 사찰의 스님들을 '산적'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지금 우리는 불공정한 행위의 대표격인 LH사태로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얼마를 받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를 해 거두어들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사찰 또한 더 이상 '산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