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정치인이 있다. 여기서 ‘젊은’ 정치인이란 물론 아직 나이에 대한 접근도 있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엔 ‘노회’하지 않은 순수와 열정이 담겨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술자리는 술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보다는 피치 못할 자리인 경우가 많다. 술자리가 공식석상보다 편안하게 자기 속내를 말하고, 서로를 드러내놓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어 종종 흉금을 털어놓기도 한다.
필자도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사람을 많이 만나 개인적 술자리를 자주 하게 되는데, 최근에 만난 ‘젊은’ 정치인과의 술자리의 대화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젊은’ 정치인의 말은 짧게 요약하자면, 갈수록 자신의 정치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젊고 제대로 된 정치, 노회한 정치가 아닌 말 그대로 참신하고 ‘젊은 정치’를 해보고 싶은데 종종 나이나 기존 정치구조에서 일어나는 틀 속에서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 소회이니 그 세부적인 말까지 옮길 필요는 없지만, 현장에서 스스로 경험하고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 ‘젊은’ 정치인의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는 미디어에 나타난 모습만 보면 ‘생산재’라기보다는 ‘소비재’다. 언론으로써 종종 자괴감이 드는 것 중 하나도 바로 이 부분에 있어 언론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하나라는 물음이 던져질 때이다.
우리는 자주 정치의 공공성과 정치인의 국민과 나라,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성을 언급하지만 그들이 ‘새롭고, 혁신적으로 정치를 변화시키고 노력하는 모습’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데 있어서는 인색하다. 아니 관심이 없다.
지역사회를 위해 조례를 만들고, 지역구민을 위해 노력하고, 조금이라도 더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도 있고 지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우리는 그런 노력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정치는 썩은 물이지’라며 몰아세우기에 바쁘다. 그런 현실에서 ‘젊은’ 정치인이 기존의 틀을 깨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힘겨움을 넘어 때로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물론 정치가 지금껏 보여 온 행태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들을 불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니 오히려 때로는 더 강하게 담금질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심’과 ‘애정’이 없는 비판은 정치를 거꾸로 가게 한다. 지역사회와 국민을 위한 ‘생산’을 낳는 일이 아닌, 욕하고 씹는 껌처럼 ‘소비’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넘겨진다.
지금 필자는 정치인이나 국민들 사이에서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 또한 좋은 정치라는 것이 젊고 늙고의 문제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젊은’ 정치인의 소회를 들으면서 과연 ‘정치의 주인은 누구인지’, ‘좋은 정치가 궁극적으로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할 뿐이다.
정치는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성장의 문제’라면, 정치는 그 성장을 어떻게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나눌 지에 대한 ‘민주주의 문제’라는 前 미국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의 말처럼 정치는 우리의 현실과 구조에 맞닿아 있다.
그러한 일을 책임지고 우리가 대표로 내세운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제대로 그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다름 아니라 그들 역할이 바로 우리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젊은’ 정치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저 축 처진 어깨가 ‘낡은 정치’ 때문에 힘겨운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책임감 때문에 겪는 무거운 어깨가 되길 바랬다.
봄이다. 선운사에는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고, 모양성 자태도 생기가 가득하다. 이 기운, 그 ‘젊은’ 정치인에게 전해주고 싶다. ‘젊은’ 정치,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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