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차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세요. 시장님 브리핑이 있어요.” 이른 아침 뜻밖이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량을 공사업체 직원이 막아선다. 6월 초 전주 중인동 모악산 개발 브리핑 현장. 모악산은 1년 365일 전주시민뿐 아니라, 산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100대 명산 중 한 곳이다.
이날 우범기 전주시장이 발표한 모악산 관광지 조성계획은 3만 제곱미터 부지에 ’공공 캠핑장‘을 세운다는 게 주요 골자. 가족 단위 방문객이 이용할 대형 놀이터와 미로 정원 등 놀이시설은 물론 카페와 레스토랑 유치. 예산은 2027년까지 618억 원. 재원은 산림청과 문체부 등 공모사업이다.
앞서 전주시는 지난해 4월 ’왕의 궁전‘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아중호수와 덕진공원, 전주천 등 명소마다 시장이 직접 발표했다. 개발사업은 7건으로 늘었다. 사업비는 대략 4조 원이 넘는 규모다. 전주시 올해 예산은 2조 5천억 원이다.
“아스팔트에 보도블록? 아스콘을 깔아야지. 자동차 하중 못 견디지. 다 부서질걸.” 전주시민들이 동서관통로라 부르는 ’충경로‘에서 만난 한 시민단체 대표의 통탄이다. “전주시에 자료요청 전화헌 게 도로 우수사례로 국토교통부의 상도 받았데야.”는 말도 더한다. “이럴 때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 해야겠지∼” 씁쓸해 한다.
<충경로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객리단길 입구의 플래카드다. 사진과 함께. 충경로 ’사람의 거리‘ 조성사업. 2022년 1월에서 25년 11월까지. 다가교에서 병무청 네거리까지 공사 중이다. 상가 앞, 버스정류장까지 시멘트벽돌 묶음이 수북하다. “장사가 안돼, 문 닫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 멀쩡헌 거리 파헤쳐서 우리가 먼저 죽어.” 상인의 하소연이다. 예산 230억 원. 참 큰돈이다. 전주 전세사기 2,300만원 1,000가구를 도울 수 있는 돈이다.
지난 3월. 전주시는 하천정비사업 일환으로 전주천 버드나무와 오래된 수목들을 잘라내어 시민들 원성을 충분히 샀다. 또한 KCC농구단 부산 이전으로 화난 시민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그때마다 전주시 개발계획 발표 때와는 달리 시장은 부하들 뒤로 숨었다.
“산림을 싹 엎어버리자는 거네. 이러다 전주에서 바나나 나오것다!” “숲지 조성에도 모자랄 판에...이게 뭐니.” “쓰잘데기 없는 개발 돈 낭비 말고 보도블록 좀 그만 파고 복지나 좀 신경 써주게.” 모악산 관광지 조성계획 발표에 올라온 수십여 댓글들이다.
모악산. 행정구역으로 완주·전주·김제가 3분하고 있다. 전북 동남부 일부 산악지역을 제외하고, 어디서나 또렷이 보인다. 전북의 랜드마크다. 우리들 서사(敍事)다. 미륵불과 후백제 견훤의 금산사 유폐, 증산교, 동학농민혁명, 금(金), 동진강과 호남평야, 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완주군은 구이 상학마을 모악산자락에 관광단지를 만들어 상가와 도립미술관, 축구장을 조성했다. 예술인 마을도 들어섰다. 주민들도 전주시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바가 크다. 김제 역시 금산사 일대에 유스호스텔과 소규모 눈썰매장, 놀이기구, 캠핑장까지 만들었다. 반면 모악산 북부 전주 중인동은 사람의 손이 덜 타 산 풍경이 고즈넉이 살아있다. 8, 90년대 자연사박물관이다.
완주군 구이는 방문객들이 그런대로 있지만, 금산사 쪽은 “주말이나 평소에도 파리 날린다.”는 주민들 반응이다. 그런 와중에 전주시의 무책임한 ’모악산 관광지‘ 개발계획. 한마디로 ’콘크리트 모악산‘이다. 며칠 전. “일본의 한 지자체가 새로 지은 아파트가 후지산 조망을 가려 철거하기로 했다.”는 뉴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리더는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때문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두렵다. 중간에 결정이 잘못된 걸 깨달았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번복해야 한다.” ’리더란 무엇인가‘ 책 저자는 말한다. “리더가 된 사람은 이미 인정받은 사람이다. 후대를 위해 기초를 쌓는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덧붙인다.
지금 전주에 펼쳐진 토목사업들이 철도·항만·도로처럼 사회간접자본, 인프라라 인식하는지 묻고 싶다. 과거 김완주 전주시정은 연간 방문객 1,500만 명의 ’한옥마을‘을 복원했고,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에 한글 현판 ’전주‘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내걸었다. 또 탄소산업, 전주국제영화제와 한지축제를 시작해 문화정체성을 한층 강화했다. 전주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하천의 건강성을 회복해 수달이 사는 ’자연나라 전주‘도 만들었다. 이때 “전주다운 全州, 자랑스러운 전주가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말한다.
우범기 전주시정 2년. 반환점이다. 지금의 토건사업, 참으로 우려스럽다. 지난 주말. 모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중인동 계곡. “멀쩡한 바닥에 큰 돌 깔고 콘크리트로 발라놓았네요. 자연형하천 복원이라구? 하 참∼. 우리 곳간이 줄줄 새고 있어. 눈 부릅떠야지요.” 동네 주민의 일갈(一喝)이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오로지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