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에 기온이 33℃를 넘나들어 일찍부터 더위와 전쟁이 시작되었다. GDP는 늘고 있다는데 시민들은 물가고에 불경기, 오르지 않는 월급에 실질 소득이 줄어 점점 허리가 휜다. 나라 곳곳에 불협화음이 삐걱대고 무엇하나 기대할 일이 없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에 전공의들이 이탈한 뒤 이어진 의정갈등은 여전히 해결될 기미조차 없이 평행선을 달린다. 18일부터 서울대 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들이 집단휴진에 들어간다며 의사 총파업을 유도하지만, 개인 병원들은 동참을 거부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의대생 학부모들이 나서서 의사들의 집단 파업을 동조하고 나섰다. 학부모들은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라며 적극적인 투쟁을 촉구했다. 이들은 ‘서울대 의대 비대위에 고함’이라는 글을 학부모 모임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학부모들은 “오늘의 환자 100명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환자는 1,000배 이상으로, 당장의 환자 불편에도 지금은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또 “돌아설 수 있다면 애초에 내딛지 않는 것이 모든 의대생, 전공의, 그리고 환자를 위한 길”이라고 선동하는 글을 올렸다.
‘오늘의 환자 100명’을 버리더라도 앞으로 돈 많이 벌고 잘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뒤 문장에 나오는 내용에 ‘모든 의대생, 전공의를 위한 길’이라는 표현은 맞겠지만, ‘환자를 위한 길’이라는 대목은 섬찟하다.
채 상병 사건은 21대 국회에서 특검법을 의결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헛짓이 되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1호 안건으로 상정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22대 국회는 여당이 거대 야당의 일방독주라며 원구성조차 미루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거대 야당을 만들어 준 게 누구인가? 바로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다. 대통령이 0.7% 차이로 당선하여 국정을 주무를 수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국민이다. 그 국민이 이 정부가 맘에 들지 않았기에 야당에 2/3에 가까운 의석을 몰아주었다.
대통령과 여당의 독주와 잘못을 철저히 감시하고 견제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그 명령에 따라 정부를 견제하고 일을 바로 잡으려는 국회가 만든 법을 대통령이 번번이 거부권으로 무효화했다. 지난 총선은 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중간 평가였다.
국민의 눈에 들지 않은 정부가 국민의 뜻에 따라 구성된 국회를 부인하는 일은 반역에 가까운 행위다. ‘국민의 눈 밖에 난 여당’과 합의하지 않은 법률이라는 이유를 달아 국회에 되돌려 보내는 일을 22대 국회에서도 반복한다면 주인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15일에는 대통령과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 집회가 이어져 ‘탄핵’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 야대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손에 쥔 허망한 권력의 힘을 믿고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국민 생각과 정부 생각이 서로 다른 ‘따로국밥’을 차린 가운데 민생은 점점 더 어렵다고 한다. 소상공인들은 온라인 판매에 고객을 빼앗긴 데다 소비자들이 쓸 돈이 없어 소비를 줄이고 있으니 문 닫는 자영업자가 자꾸만 늘어가는 형편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상가나 시장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하는 상품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소매점도 나름의 생존대책을 마련하여 온라인 구매로 만족할 수 없는 품목과 판매방식을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정부가 파악하여 소상공인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주고 업종전환이라도 도와주는 지원이 절실한 형편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로지 대통령 눈치 보기에 몰두하느라 민생은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심각한 사태를 파악한 일부 지방 자치단체들이 나름대로 교육과 지원을 시행하고는 있으나 정부 단위의 지원 없이 자치단체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정책과 지원이 절실한데도 눈에 보이는 조치가 없다.
지난날에 석유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심해여서 웬만한 정도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 동해 유전에 어마어마한 석유가 있다고 대통령이 직접 나와 설명했지만, 국민의 60%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시추조차 해보지 않은 지역에 어마어마한 석유가 들어있다는 말을 대통령이 직접 나와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애매한 정보를 대통령이 직접 전달하는 일도 우습고 석유 탐사를 맡겼다는 이상한 회사 이야기도 뭔가 대본에 적힌 대로 움직이는 연극무대 같다.
거기다 갑자기 북한과 평화합의가 깨졌다며 대북방송을 시작하는 등 남북 갈등을 키워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듯한 일도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기시감이 든다. 적극 지지층인 노인들마저 떠나려는 불안에서 나온 처방인지 모르지만, 너무 구닥다리로 보인다.
떠나간 국민의 마음을 불안 심리나 애매한 정보로 되돌려 보려는 태도에 국민은 더욱 실망한다. 잘못을 빌고 고쳐나가려는 자세와 실천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잘하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떼쓰는 아이를 보는 듯하다.
잘못을 빌며 용서를 받은 다음에 그 잘못을 고쳐 국민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다.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외려 국민을 설득하려 드는 태도에 국민은 점점 더 분노하고 실망한다. 머슴이 주인의 뜻을 자꾸만 거스르면 쫓겨나는 게 순서다.
제발 22대 국회는 여야가 국민의 뜻을 바로 살펴 제대로 된 국정이 수행되기를 빈다. ‘뚝심’이니 하는 것들도 국민의 지지 아래서 유효하다.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잃은 권력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허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