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어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 외엔 유명한 배우, 감독, 재밌는 이야기 어디에서도 주목할 것 하나 없다. 평범한 촌부의 일상을 그린 이 영화는 여느 독립영화처럼 불과 7개관, 첫 주 관객 만여명에 못 미친 숫자에서 시작했으나 점점 입소문을 타고 개봉관이 늘어나더니 두달여가 넘은 현재, 2백5십만 관중이라는 실로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예상치 못한 흥행으로 영화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이 영화를 관람하러 극장에 들어갔을 때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극장에는 20~30대의 젊은이들로 가득찬 반면 이 영화는 소재 때문인지 40대가 넘는 중장년층의 나와 같은 관객들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워낭소리」는 연세가 많은 다소 몸이 불편하신 시골 할아버지와 40여년을 함께 살아온 소의 생활을 잔잔하게 그려낸 논픽션이다. “내 이 소 덕분에 자식들 대학교육 시켰지.”라는 할아버지의 대사가 나온다.
우리네가 자랐던 시대에는 거의 모든 농가에는 소 외양간이 있었으며 이 곳에서 일꾼 소를 키웠다. 이 소는 농사일을 대신하기도 새끼를 낳아서 우리네 가정에 보탬을 주기도 한 그런 믿음직한 존재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하나의 경제적 수단이었다.
지금은 그 소가 해왔던 쟁기질이며 무거운 짐 운반, 농사일들을 대부분 기계가 대신하고 기업형식의 대단위 목축업을 하는 곳에서 육욕용으로만 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교육자로 40여년을 바친 나에게 이 영화를 본 후 당연히 교육과 연관지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시대에는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자녀교육에 매진해야 하는 우리네 부모에게 선생님이란 존경의 대상이었고 이들 사이에는 신뢰와 존경이 있었다. 인터넷과 교통도 발달하지 않았던 그 때엔 다소 느렸지만 사람 사이에 훈훈한 정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요사이 급격한 도시화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해진 것은 사실이나 각박한 사회가 된 것 또한 현실이다. 교사의 역할 또한 존경받던 스승에서 지식의 전수자와 같은 일차적인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와 과거가 교차되면서 잔잔한 여운이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워낭이란 소의 목에 매단 방울을 뜻한다고 한다. 마치 조용한 절의 풍경소리와도 같이 딸랑딸랑 거리는 그 워낭소리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준다. 교육은 百年之大計 라 하지 않았던가? 하루아침에 개성과 능력이 각기 다른 우리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도 그 결과를 측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교육 또한 사랑과 애정으로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교육이 교실에서도 이루어져야 되지 않을까? 보통 15년을 산다는 소가 노인과 함께 40여년을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과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희망의 눈높이를 맞추며 끊임없이 사랑의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기적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40여년을 사료도 먹이지 아니 하고 힘든 꼴베기로 여물을 쑤어 기르는 이 촌부와 소가 발걸음을 맞추며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우리 교육에 있어서도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와 교사가 저런 믿음이 담긴 사랑과 소통으로 발걸음을 맞춘다면 훨씬 더 밝은 교육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빨리 빨리 속도만 맞추려 하지 않고 느려도 나누며 돌볼 수 있을때 우리 교육이 제 길을 바로 가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철저한 교육관을 가지고 책임을 다하는 다수의 교사와 이를 신뢰하는 아이들과 학부형님들이 손을 맞잡고 걸어갈때 밝은 미래의 공교육을 그려본다.
/전주한들초등학교 교장 박 상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