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이미 장마가 끝나고 내리쬐는 볕이 따가워 그늘에 숨어야 하는 7월 중순이건만 올해는 아직 본격 더위가 실력 발휘를 하지 않았다. 긴 장마 덕분(?)이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고 자기중심 사고에 길든 종(種)인가 싶다.
지난달 말부터 윤 정부의 차관급 인사가 잇따라 발표되었다. 그런데 발표되는 인사에 뜨악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실 비서관들이 대거 차관급으로 자리를 옮기는가 하면 극우 유튜버가 발탁되고 힘깨나 쓰던 여자 역도 선수도 차관으로 발탁하였다.
그리고 윤 정부가 중용하는 인재(?)의 상당수가 실패한 정권인 이명박 정부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방통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진 이동관 씨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중 핵심 인물로 현재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다.
거기다 이병박 정부의 문체부장관을 역임하면서 취재 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자신의 이미지를 한층 격상(?)시켰던 유인촌 씨를 대통령 비서실 문화체육특별보좌관에 기용했다. 유 씨의 욕설과 삿대질 영상은 유튜브 유명 짤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언론인 출신이면서 언론 통제를 추진하려 했던 인물과 국회에서 “찍지마 xx, 이 xx야!”를 외쳤던 MB의 총신(寵臣)이 윤 정부의 특보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우파 정권에서 남다른 퍼포먼스를 기록했던 이들이 이 정부의 요직에 두루 포진해 있다.
갈수록 친위대를 연상케 할 인물들이 대통령 주변을 싸돌고 있다. 몇몇 인사는 임명권자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자격이나 능력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면도 보인다. 그들의 자격을 필자 개인의 짐작으로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대중의 총평은 ‘부적합’이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부족한 지도자여도 사람을 잘 쓰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재단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다.
우리 조선 역사에서 가장 현명했던 군주를 뽑으라면 ‘세종’ 임금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쓰는 한글을 대신들의 반대 속에서 창제한 위대한 업적이 있고 신하들을 적재적소에 등용할 줄 아는 진실로 ‘대왕(大王)’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분이었다.
세종은 31년 재위 기간에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북방의 6진을 개척했으며, 과학기술을 꽃피웠고 음악 및 예법마저 정리했다. 세종의 시대에는 명재상 황희를 비롯해 과학의 장영실, 음악에는 박연이, 북방 개척에는 김종서가 있었고 문학에는 변계량, 정인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세종의 브레인 집단으로 집현전의 학사들이 있었다. 세종 시대에는 다른 시대에 보기 드문 인재가 넘쳐나고 있다. 곳곳에 넘쳐나 보이던 인재들은 다 어디서 나왔을까? 세종이 복이 많아서 그 시대에만 인재가 한꺼번에 쏟아졌을까?
고려를 엎어버리고 새 나라를 건설한 조선 초기는 어수선했다. 고려의 유신들이 새 나라를 거부하는 가운데 가까스로 나라의 기틀이 잡혀가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이어서 인재를 찾기 어려웠지만, 세종은 필요한 인물을 알아보고 중용했다.
황희를 비롯하여 세종이 중용한 신하들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반대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울러 가정이나 사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세종은 다독거려 덮어주고 처벌하지 않았다.
재상 황희는 세종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신하들의 능력을 보고 세종에게 추천하여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적소에 배치하여 세종을 도왔다. 세종의 시대는 성군 세종과 유능한 재상 황의가 합작하여 만든 황금시대였다.
명 재상 황희도 문제가 많았다. 매관 의혹과 아들의 부정 축재, 사위가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으나, 다 덮어주며 끝까지 중용하였다. 황희는 여러 차례 벼슬을 고사하고 물러나려 하였으나 세종은 놓아주지 않고 87세까지 영의정 자리에 두었다.
신하들은 저마다 개성이 강하고 걸핏하면 말썽을 일으켰으나 세종은 벌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총신들을 시기하여 모해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세종은 인재들이 일을 잘하도록 성원하고 함께 토론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련한 지휘자였다.
세종은 탁월한 학식과 국정 전반에 걸친 판단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실력은 재위 동안 1,800번 넘게 신하들과 정책을 토론하는 경연(經筵)을 벌였다는 사실만으로 증명하고 남는다. 재위 31년이니 한 달에 다섯 차례나 경연을 연 셈이다.
거의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임금이었지만, 늘 신하들과 어울려 의견을 듣고 좋은 방향을 선택할 줄 알았기에 성군(聖君)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세종이다. 오늘날 지극히 제한적인 권한을 국민에게서 받은 대통령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잘 일러주는 사례다.
정부 기구 안에 숱한 자리가 말하듯 오늘의 국가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 가운데 가장 국민의 뜻을 잘 받들 수 있는 인물을 찾아 기용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게 대통령 몫이다.
모든 부서에 기용하는 인물은 구색 맞추기가 아닌 인재(人才)여야 한다. ‘일은 내가 할 것이니 너희는 들러리로 구색이나 맞추어라’하는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원하는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바란다. 인재를 잘못 기용하면 인재(人災)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