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정치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극우 보수세력끼리 뭉쳐서 따르지 않는 대다수에는 관심조차 없는 패거리 정치가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나라 경제 사정엔 아랑곳없이 미국의 품에 뛰어들어 일본 도우미 노릇을 자청한 정부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가 임박해도 아무런 대책도 반응도 없다.
일본 어민들도 반대하는 오염수 방류인데 우리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적어도 방류를 강행하는 일본에 대해 방류로 인한 해수 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다짐조차 요구하지 않고 있다. 마치 남의 일인 듯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아울러 방류 후에 방사능이 검출되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대응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않고 4일 IAEA(세계원자력기구)의 방류 안전성 조사 발표만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일본이 거액의 IAEA 분담금을 부담하는 현실에서 IAEA는 이미 사실상 방류를 용인하고 있으므로 4일 결과는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방류를 극력 반대하고 방류 후 오염으로 우리 어업에 피해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상 정도는 약속받아야 정상이다.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는 아무 말이 없고 대만과 홍콩에서는 방류하면 일본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반대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67%가 반대하는 오염수 방류인데 정부는 이견조차 없이 찬성하는 모양새로 일관한다. 국민의 뜻을 묻는 투표로 대통령이 선출되고 여당이 되었다면 당연히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안은 비단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만이 아니다. 모든 결정은 대통령이 알아서(?) 결정하고 말이 나오면 수하들은 그 말이 옳은 방향인지는 생각조차 없는 듯 시행에 들어간다. 갈수록 검사 출신과 극우 편향 인사들을 기용한다.
검찰과 경찰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안하무인의 사무총장을 둔 감사원이 전방에 나서서 입맛에 맞지 않는 정부 기관을 마구잡이 털어내는 수사와 감사로 철갑무장하고 누구도 대들지 못하는 절대권력을 형성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이처럼 큰 주먹을 휘두르지 못했다. 절대권력을 누리던 박정희도 야당의 눈치를 보고 가끔은 손을 내밀어 다독였다.
윤 대통령은 28일 반공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비판했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전 정권에 대한 비판이 마침내 ‘반국가 세력’이라는 호칭으로까지 발전(?)했다. 지난 정부의 일이 옳지 않다면 국민의 뜻을 물어서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이 정부가 시행하는 일도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게 민주주의다.
정권을 인수하여 1년이 넘도록 안 되는 일은 지난 정부 탓으로 돌리는 정치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헌 갓쟁이 트집 잡듯’ 묵은 일을 들추어 허구한 날 조사하고 문제 삼아 봐도 모두 지난 날이고 별로 얻을 게 없다.
잘했는지 못 했는지는 역사가 심판할 일이다. 나만 옳고 다른 생각은 다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민주주의는 다른 이념, 다른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이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반국가 세력’으로 모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대로’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라는 그 법(法)의 원천은 국민이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만들고 국민이 선출한 정부에서 관련 법과 규칙, 규정을 만들어 시행한다. 우리 헌법도 국민투표를 거쳐 만들어졌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법, 국민이 찬성하지 않는 정책은 당연히 고쳐야 한다. 정부 여당이 원하는 일이라 해서 일사천리로 결정하고 시행하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여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소신대로 한다는 생각은 강단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일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일꾼을 뽑는다. 지주(地主)인 국민이 농사를 잘 지을 머슴을 골라 뽑아 일을 시키는 게 선거다. 일단 선출되었으니 내 소신대로 한다는 머슴의 생각은 주인들에 대한 불경이고 배신이다.
대통령은 전제 군주 시대의 임금이 아니다. 나라의 모든 일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해 정해지고 시행되어야 한다. 대통령 이하 모든 선출직과 임명직 공무원들은 국민을 위해 보수를 받고 일하는 일꾼일 뿐이다.
누구도 국민의 뜻에 거슬리는.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중앙과 지방의 선출직과 임명직 공무원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관리(官吏)라고 생각한다.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에 임금이 임명한 일꾼이 관리다.
행정기관끼리 서로 협조하여 일을 하는 과정을 협치(協治)라고 말한다. 공직자들이 서로 도와 국민을 다스린다? 머슴이 주인을 다스린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걸핏하면 협치이고 ‘민관(民官)합동’ 따위의 문자가 언론에 등장한다.
이 나라에는 관(官)이나 관리가 없다. 임금이 내린 벼슬이 아니라 국민이 시킨 일꾼들이다. 일본은 왕이 있으니 관리라고 해도 된다. 우리는 국민이 시켜는대로 해야 하는 일꾼이고 머슴이다. 국민은 벼슬을 내리지 않는다. 일을 시킬 뿐이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임금이 되는 게 아니라 우두머리 일꾼으로 임명되는 것이다. 나머지 선출직과 임명직 일꾼들을 지휘하여 주인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을 뿐이다. 어떤 결정도 국민의 뜻에 어긋나거나 바라지 않는다면 철회해야 마땅하다.
법대로 한다는 일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법대로’가 아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어렵고 책임이 막중하다. 지금의 법(法)은 치자(治者)의 도구가 아니라, 일꾼의 행동을 옭아매는 고삐이고 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