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론으로 갑론을박이다.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도 도마뱀이 꼬리 자르고 달아나듯 '꼬리 자르기'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참사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공식적인 사과가 없다. 다만 종교행사 참석 등 간접적으로 사과를 하고 있다. 가장 큰 책임자인 행안부장관에게도 면죄부를 줄 것 같은 모양세다. 용산경찰서장과 용산구청장이야 당일 행적으로 보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다.
여기에 그 윗선인 경찰청장과 행안부장관까지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그럼에도 국정 최고 책임자의 생각은 요지부동인 듯하다. 국민만 생각한다던 그의 말이 ‘립서비스’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대선 때, 그가 그렇게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갔는가. 정치는 신뢰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야 튼튼하다.
그런데 최근의 정치는 여야 가릴것 없이 그야말로 말장난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앙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지방정치도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처럼 겉만 번지르르하다.
#도지사, 도민과 소통해야
지난 7일 전북도의회 현관에 펼침막이 걸렸다. 내용은 “<stop> 김관영 도지사 인사독재, 부적격 개발공사 사장 임명 거부 <stop>.”
김관영 지사가 전북개발공사 사장으로 추천한 서경석 후보에 대해 전북도의회가 청문회를 통해 자질이 부족하다며 청문을 중단했음에도 김 지사가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한 도의회의 항의였다.
다음날 도의원들은 전북도의회 제2차 정례회의에 출석한 도지사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오은미(진보당·순창), 이수진(국민의힘 비례), 장연국(민주당 비례), 김성수(민주당·고창1) 의원 등은 회의가 열리자마자 한목소리로 김 지사를 성토했다.
발언대에 오른 의원들은 ‘자료제출을 거부했고 개발공사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북 폄훼 발언’ 등으로 도저히 청문을 진행할 수 없었음을 설명하며 김 지사의 임명 강행을 따져 물었다.
특히 장연국 의원은 “인사청문회를 진행조차 할 수 없는 부적격한 인사를 후보자로 추천한 것도 모자라 그 임명을 강행한 것은 불통 행정을 시작하겠다는 김 지사의 선전포고와 같다”며 “김 지사는 즉시, 180만 도민을 대표하는 의회와 소통하고 협치할 수 있는 길로 되돌아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성수 의원 또한 “서경석 후보자는 임대주택을 포함해 집을 4채나 가지고 있다. 그런 다주택 보유자를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힘써야 할 전북개발공사 사장으로 임용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라며 김 지사에게 도민에게 사과하고 임용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 지사는 서경석 사장의 임명을 철회해야 옳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김관영 지사는 서경석 씨를 전북개발공사 사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도의회가 서 후보자의 전문성 부족과 재산증식 과정, 투기 의혹 등을 제기한 이틀 만에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김 지사는 임명장을 교부한 뒤 기자 간담회에서 “개발공사의 역동적인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고 판단했다.”라며 “더 나은 개발공사를 향한 꿈을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결정했다.”라고 했다.
반면 도의회는 즉각 반발했다. 국주영은 도의회 의장은 “서 후보자는 모든 면에서 적격성에 근접할만한 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매우 이례적인 후보였다는 게 청문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공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후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도의회는 앞으로 전북도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히 서경석 사장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조사할 전담팀을 구성해 철저히 뒤를 캐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민주당이 대다수인 도의회가 민주당 도지사와 정면 대결로 치닫는 형국이다.
#내 사람 끌어안기, 누굴 닮았나?
김 지사는 전북도의회 인사청문회에 대해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인사청문위원회가 폐회됐다"면서 "규정상 2일 이내에 보고서가 송부되지 않으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규정에 따라 최종 판단했다"고 지난 3일 임명 이유를 설명했다.
청문 절차가 파행으로 치달은 사실을 모르고 의견이 없어서 임명했다는 변명은 참으로 어설프다. 도의회 진행 상황은 정무라인을 통해 즉시 알았을 터이고 후보자의 말도 들었을 것인데도 의견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건 기가 막히는 억지다.
문득 교육부총리 임명을 강행하던 윤 대통령이 떠올랐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던 말과 “더 나은 개발공사를 향한 꿈을 더 지체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결정했다.”라는 말이 자꾸만 겹쳤다.
그동안 김 지사가 전북도정을 역동적으로 이끌며 뭔가 가능성을 볼 수 있어서 큰 희망을 가졌었다. 뭔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었다. 젊은 도지사를 뽑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사 문제에서 자꾸만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번 전북개발공사 사장 임명에 즈음해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런 걱정을 들었다. 만나는 이들은 기준 없는 명예도민증, 전국 경향각지의 사람을 전북도정 자문단으로 임명하는 일, 타지역 출신 인물 기용 등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드러냈다. 내사람 만들기를 위해 전북도정을 자신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나왔다.
지금 전북은 절체절명의 어려움에 처해있다. 크고 작은 현안들이 산적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힘이 부친다. 이런 가운데 중앙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젊은 도지사를 우리의 지도자로 택했다. 그리고 그에게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인사에서 도민과 소통하지 않았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지역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보태야 하고 한 푼이라도 지역에 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꾸만 뒤로 밀리는 전북을 위해 몸이라도 던질 사람이 필요하다. 그럴싸하게 떠벌리고 결과는 다른 지역에 내주던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능력의 기준을 지모(智謀)에 두기보다는 정직과 충실(充實), 그리고 인성(人性)을 중요시하는 인사 행정이 필요하다. 특히 도의회는 도민의 대의기관으로, 김 지사는 도의회와의 소통행정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