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즈음에
스무 살 즈음에
  • 전주일보
  • 승인 2021.11.01 1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성수 시인
정성수 시인

왜 그때 
가슴은 뜨거워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
차디찬 이성만이 한여름을 건너갈 수 있다고
믿었을까
스무 살 즈음에
곧은길만이 길이라고 알았을까
굽은 길을 천천히 걸을 때
풀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체
바보처럼 뛰기만 했으니
스무 살 즈음을 생각하면 젊은 날이 흔들린다
다시 스무 살 즈음이 돌아온다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슬퍼할 것이다

 

 

# 스무 살 무렵에는 생각이 깊어진다. 겉으로는 생기발랄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할 때가 많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한다.

 아무도 모르게 은둔을 생각하기도 하고, 멀리 등대가 보이는 어촌에 들어가 작은 낚싯배 하나 얻어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꿈을 갖기도 한다. 머리를 밀고 절로 들어가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어 한다.

 심지어 자살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 생각에 물들면 청바지에 손을 꽂은 채 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혼술을 마시면서 삶이란 무엇이냐고 자문자답을 한다. 핸드폰이 울리면 반갑고 하루 종일 전화 한통이 없는 날은 혼자서 무너진다.

 스무 살 무렵의 세상은 낯설다. 일찍 군대에 간 친구가 군복을 벗고 찾아온 교정에 핀 철쭉은 싱싱하지만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험기간이 되면 도서관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도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스무 살의 봄은 골목 소줏집에서 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좋고. 젊음을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도 누구 한사람 말리지 않는다. 골목에 어둠이 슬금슬금 밀려오면 열쇠로 따고 들어오는 자취방은 보일러를 켜도 스산하다.

 그 나이에는 삶의 전장에 묻고 왔다고 믿었던 부장품들이 옷장 속에서 기어 나오기도 한다. 때로 열정이 잠들고 절망이 잡풀처럼 자라 머리는 쑥대머리가 된다.

 하늘 빛깔은 여전히 어둡고 앞날은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면 새날이 올 것을 믿는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부둥켜안고 울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스무 살 무렵은 여전히 그리워 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