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소에 실려 온 늙은 나무는
톱날을 받아드리면서도
봄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꽃이 피면 꽃놀이를 하고
꽃이 지면
늙은 나무답게 산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옆 나무들이 천둥 번개에 놀라 울부짖어도
눈보라에 앞을 못 봐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늙은 나무는 모르는 것이었다
한번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지금도 시골 마을 입구에는 당산나무堂山-가 있는 곳이 많다. 주로 고목이 된 노거수老巨樹들로 마을의 전설을 품은 신목神木이 많다. 사람들은 당산나무를 함부로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고 믿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마을의 번창과 마을사람들의 복을 위해서 당산제堂山祭를 지내기도 했다. 내 고향에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다송리多松里다. 어린 눈엔 거대한 나무였다. 인근에는 그 보다 큰 나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나무 아래에는 6ㆍ25 전쟁 시에 묻힌 인민군 묘지 3개가 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는 도깨비불이 묘지 주위를 빙빙 돈다고 했다. 우리는 비가 내리면 소나무 옆에 가면 큰일이 난다고 믿었다. 해가 떴다하면 소나무는 넓은 그늘을 폈다. 대전에서 군산비행장으로 가는 미군 군용차가 쉬었다 갔다. 우리는 미군들에게 껌이나 쪼크렛을 얻어먹었다. 어느 땐가는 일회용 카피를 과자로 알고 먹었다가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했다. 이 세상에 와서 처음 배운 영어가 ‘쪼코렛토 기무미’였다. 대개의 당산나무는 느티나무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동네만 유일하게 소나무였다. 늙은 소나무에게선 말없는 지혜가 흘러 나왔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자 소나무들은 무참히 잘려나갔다. 다행이도 몇 구루가 살아남아 고즈넉이 서 있었다. 늙은 소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나이테에 품어 세월을 주름잡으면서 지금도 고고固固하고, 고고高高하고, 고고孤孤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늙은 소나무는 말한다. 나는 수많은 세월을 한 자리에서 풍상을 견딘다. 고작 백년도 못사는 인간들아 살아가는 동안만이라고 ‘징징대지 마라. 참는 것이 남는 것이다’ 바람 같은 말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