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들이 후드득 후드득
빗소리를 내며 탄다.
마당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아궁이의 불빛은 어머니의 추억처럼 따뜻하다
새색시처럼 앉아서
추억을 한 줌 한 줌 아궁이 속에 던지는 어머니
열아홉 꽃피던 시절
어느 총각을 불처럼 사랑했으리라
뜨겁고 수줍은 날 있었으리라
불빛이 저녁놀이 되어
어머니의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삭정이 같은 어머니의 삶이
아궁이에서
저녁밥을 지어내고 있다
불빛 사그라지면 아궁이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퍼내고
재티 속에는 추억 몇 개 남는다.
어머니의 아궁이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첫사랑이 별처럼 반짝인다
한 때는 어머니의 아궁이는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무쇠 솥에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가끔 황등장에 나간 아버지가 손에 들고 온 생닭을 삶으면서 연신 매운 눈물 닦으며 불을 지폈다. 그날은 우리 식구들 생일날이 되었다. 밥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머니가 뜯어주는 닭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의 아궁이는 온갖 풍상을 발아들이며 제비새끼 같은 형제들을 뽑아내기도 하셨다. 이제 어머니의 아궁이는 제 할 일을 잊은 지 오래다. 바닥에 턱을 묻은 채 시커먼 입을 벌리고 바보처럼 무료하다고 긴 하품을 한다.
한때는 시뻘건 불을 삼키고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 올리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아궁이에 땔감을 한 개비씩 넣을 때면 어머니는 몸을 최대한 낮추었다.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에 불을 때던 어머니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으셨다. 아궁이 앞에서 일어서실 때마다 “아이고 이놈의 다리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입 밖으로 토해냈다.
이제 어머니의 아궁이 불씨는 사그라졌다. 땔감인 볏짚이 더 이상 부엌을 찾지 않는다. 아궁이에 볏짚으로 불을 사르던 집안의 역사는 어머니와 함께 사라졌다. 육남매들은 어머니의 아궁이에서 멀리 빠져나와 각각의 둥지에서 살기에 바쁘다.
한 아궁이에서 나온 형제자매들이지만 각기 다른 모양으로 제사 때나 어머니 앞에 모여든다. 어머니의 아궁이가 입을 닫으면서 냉랭해진 집안 공기가 육남매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한 건 아닐까? 내 자신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