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재의 가을
모래재의 가을
  • 전주일보
  • 승인 2020.11.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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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분히 지는 낙엽 따라
가을이 진다

꽃망울 환장하게 터뜨리던 미친 날들도
심장마다 뜨겁게 끓던 정열도
희미해지는
가을 끝자락에 당도한 사람들아
지나온 날들이
모두 헛것 같다고
겨울 문턱 앞이 천 길 낭떠러지라고
두려워마라
단애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인생이다

제 아무리 단단한 나무도 잎을 떨구어내야만
나이테 하나 더
가슴에 담을 수 있나니

바람에 몸을 맡기면 낙엽 켜켜이 쌓아가며 허허로운
산이 되는
모래재의 가을

ㆍ 모래재 : 전북 완주군 소양면 ~ 진안군 (구국도 26호선)

가을은 많은 것을 생각을 하게 하는 계절이다. 낙엽을 보며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밤하늘별을 바라보며 인생을 배운다. 그런가 하면 가을 풍경에 빠져들어 행복감에 젖는다. 사랑에 울게 하고 그리움으로 날을 새게도 한다.

가을 산의 풍성함은 고독의 메아리처럼 아름답다. 가을을 닮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지고 인간 본연의 색깔에 젖어드는 가치와 순수를 동경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높은 하늘에는 양털 구름이 한가히 떠가고 밤이 되면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중 밤새 것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울음은 치열했던 지난봄과 여름을 생각하게 한다.

가을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주는 가을빛과 가을바람에서 얻어진다. 인간들은 위선과 교만 속에 살고 있지만 자연은 위선과 교만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가을 석양빛에 억새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소멸의 시간을 예고해 서글퍼진다.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살다가 바람처럼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바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보면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른 채 그냥 시간 속을 허우적대며 건너가고 있을 뿐이다. 지나 온 세월 굽이굽이 묻어둔 생각들이 살아나 마치 인생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 같아 가을은 더 짠하게 한다.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그리움이 목 까지 차오르는 가을이 가기 전에 한번 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욕망 덩어리들을 떨어버리고 겸허하고 정결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운 이에게 한통의 편지를 쓰자. 그리움조차 잊어버리면 눕고 싶은 것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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