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새벽별을 보고 논으로 나가면 오밤중에 돌아왔다. 그날도 나는 철길 너머 캄캄한 논둑을 더듬거려왔을 아버지의 풀지게 옆에 다가 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부지, 오늘. 선생님이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길래, 아버지처럼 농사를 짓겠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바보 같은 놈아, 그걸 말이라고 해. 땅을 파먹겠다니?’ 버럭 화를 내는 아버지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밤새 내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죽여 울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절대 땅을 파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중략-
어느 날, 밥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밥 한 그릇을 때려치우고 그것도 모자라 밥통을 열었다. 한 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의 밥을 가반하고 있는 자식이 거기 있었다.
와야마을 : 전북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 소재
우리가 매일 먹는 밥알 하나하나는 누군가가 흘린 땀방울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밥 먹을 자격이 없다. 밥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 밥에 먹히는 사람이다. 밥을 먹는 것은 자연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깨끗한 우주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밥이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면 자연의 앙갚음으로 숨이 끊어진다. 빛도 물도 바람도 구름도 밥, 삶도 죽음도 밥, 얼굴도 맘도 밥이다. 세상에는 밥 아닌 것이 없다. 밥은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된 우주의 실체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모시고 밥을 섬기고 밥을 낳는 것이 밥의 길인 식도食道다. 밥을 높이고 나눠주는 것이 삶의 옳음을 이루는 첩경이다. 밥을 모시고 섬기고 더불어 사는 요체임을 깨달아야 사람이다.
인사말 중 ‘밥 한번 같이 먹자’는 공유의 가치로 밥상에서 협동의 시간이 된다. 경쟁사회, 승자독식인 우리 사회에서 밥을 함께 먹는 순간만은 대화와 감정이 오고간다. 밥의 온기는 마음을 열게 하고 소통의 끈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