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 석탑
5층 석탑
  • 전주일보
  • 승인 2020.03.2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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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고 싶었을 것이다
5번 쯤
눕고도 싶었을 것이다
어둠을 뒤집어 쓴 미륵산도 멀어지고
사자암에서 흘러나오는 독경소리 저물어 가는
왕궁터에서

남쪽 언덕 끝에서 아스라이 살아남아
오가는 중생들
간절히 불러들이는 탑
5층 석탑

통일신라 말쯤이던가 고려 초 던가
태생조차 알쏭한
국보 289호로
쓰라린 가슴을 안고 석탑이 운다
어깃장 난 세월을 버티면서
비바람에 부대낀다

닳고 닳은 돌판 사이에서
몇 송이 연꽃
청정히 피어나려고 움짤거린다

 

◇5층 석탑: 익산시 금마면 왕궁리 소재

석탑은 석조탑파(石造塔婆)의 줄인 말로 화강암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안산암이나 점판암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구조는 크게 기단부(基壇部)·탑신부(塔身部)·상륜부(相輪部)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기단부가 생략되고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석탑이 발생한 시기는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으로 추정된다.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말엽까지 약 200년간은 목탑(木塔)의 건립 시기로, 목탑 건조에서 쌓인 기술과 전통의 연마가 드디어는 석탑을 발생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은 국보 제289호로 높이 약 8.5m다. 이 석탑은 마한(馬韓)의 도읍지로 알려진 곳에서 남쪽으로 2㎞ 정도 뻗은 산줄기 끝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 간행된 익산읍지인 금마지(金馬誌)에는 ‘왕궁탑은 폐허가 된 궁터 앞에 높이 10장으로 돌을 쌓은 것이다. 속전에는 마한시대에 만들었다고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흙으로 만든 받침을 둔 희귀한 석탑으로 알려졌다. 1965년에 해체하여 보수하면서 돌로 만든 받침을 갖추었음이 밝혀져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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