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뵈러 시골집에 갔다
양수네 밭머리를 지나가는데
사십 여 년 전에 개똥참외 하나 슬쩍했던 생각이 났다
왕소나무 뒤에서 우적우적 씹어 먹던
참외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데
묵정밭에서
누런 이빨을 한 양수란 놈이 튀어나오면서 하는 말
“너지? 우리 참외 따간 놈이”
/와야 마을 :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 소재
칠팔월은 참외 철이다. 요즘은 노랑참외가 주종을 이루지만 옛날 참외밭에서는 여러 종류의 참외가 뜨거운 햇볕 아래서 단내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호박참외, 오이참외, 개구리참외 그리고 개똥참외! 참외하면 먼저 연상되는 것이 참외 서리다.
서리는 혼자 하는것이 아니라 여럿이 하는 장난이다. 옛날에 서리는 짓궂은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자본주의 꽃이 피는 요즘은 절도다. 참외 서리는 때가 있다. 참외밭 주인이 저녁을 먹으러 갔거나 어스렁 달밤이 제격이다.
어떤 참외서리는 비오는 밤이 최적이다. 참외서리에도 도(道)가 있다. 참외 넝쿨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이 따서도 안 된다. 만약 참외밭을망쳐 놓다가 주인에게 들키면 겉보리 몇 말로 배상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부모한테 잡도리를 당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서리해 온 참외를 먹는 장소도 대개는 마을 뒷동산이나 공동묘지다. 그때 내뱉은 참외 씨가 싹터 열린 것이 개똥참외다. 참외는 쌍으로 달리는 작물이 아니다. 홀로 달려 홀로 커가는 과일이다.
참외밭의 풍경도 그렇다. 허허 벌판참외밭에 서 있는 원두막이나 참외밭을 지키는 할아버지도 혼자다. 그래서 ‘참외’는 ‘참으로 외로운 존재’다.
참외를 혼자서 우적우적 씹어 먹는 나처럼… 오늘도 외로워서 참외 하나를 통째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