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강
겨울강
  • 전주일보
  • 승인 2019.03.3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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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강 얼어붙은 가슴과 만경강 얼어 가는 가슴이
만나는 곳에서
나는 칼을 든 바람을 보았다

바람이 강심江心 깊이 발목을 담그고 있는 갈대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무릎을 꿇치면
갈대들은 워워~
쉰 소리로 목 놓아 울고

잊었던 얼굴들이 얼음장 밑에서 일어 나
천천히 다가오면
바람은 먼 겨울 속으로 서럽게
침잠하나니
나는 내 살을 파먹으면서 그대를 부르나니

 

/동진강東津江 : 전북 정읍시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들어가는 강
/만경강萬頃江 : 전북 완주군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강

사내가 사는 마을 앞에는 강물이 흘렀다. 강둑은 매우 길어 삼십분은 걸어야 끝까지 갈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피와 땀이 점철된 강둑은 시내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여름에는 강둑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과 더위를 식히려고 나온 사람들이 솔찮했다. 그 속에는 데이트하러 나온 청춘남녀도 간혹 있었다. 장마가 와 장대 같은 소낙비가 내리면 물이 강둑까지 차올라 남실거렸다. 금방이라도 강둑이 무너질 것 같아 보는 이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어느 해 여름에는 강둑이 터져 농토가 송두리째 떠내려가 마을사람들을 울렸다. 강둑이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됐다. 강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강둑에는 코스모스가 폈다. 가을바람에 코스모스들이 산들거렸다. 코스모스를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가슴이다. 코스모스가 핀 강둑을 걸으며 사내는 가을에 취했다. 아쉽고 안타깝고 그리운 기억들은 사내를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추억은 형체가 없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이 추억이다. 강둑은 사내의 추억을 불러냈지만 강물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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