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통근열차가 떠나고 나면 오래토록
칙칙 거리고 푹푹 거리는 역
톱밥난로가에 서서 벽시계에 자주자주 눈길을 주던
촌로의 보따리며
내 남자를 군대에 보내는 찢어지는 가슴이며
쇠푼이나 지고 온다는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른 기침 소리며
밤봇짐 싸가지고 도주하는 달수 형의 종종걸음이
추억의 순간들로 정지되어 버린
빈 대합실에는
늙은 역무원 홀로 남겨지고
속절없이 흔들리다만 삶이 녹슨 철길위에 누워있다
익산으로 군산으로 역명판의 화살표를 따라서
제각기 한 그릇의 밥을 찾아가는 사람들
삶의 저편에서
달려온 기차를 타고 다시 저편으로 가버리면
내 지친 몸을 오래토록 맡기고 싶은 간이역
임피역
/임피역 : 군산시 임피면의 장항선 철도역으로 건물 원형이 잘 보존되어 문화재로 지정 됨.
간이역이라는 말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서린 곳이다. 통학열차가 들어오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열차에서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촌로들의 불콰한 얼굴들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수백 개의 간이역이 있다.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은 세월에 묻혀 방치되어 옛 모습을 찾기 힘든 곳도 있다. 반면 폐간된 역을 활용해 색다른 철도 체험 추억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된 간이역은 전국에 20여 곳 있다. 서울 신촌역, 경기 고양 일산역, 경기 남양주 팔당역, 경기 양평 구둔역, 강원 원주 반곡역, 강원 삼척 도경리역과 하고사리역, 경남 진해 진해역, 경북 대구 동촌역 반야월역, 경북 문경 가은역, 울산 울주 남창역, 충남 보령 청소역, 충북 영동 심천역, 전남 곡성 곡성역, 전남 순천 원창역, 전남 여수 율촌역, 전북 군산 임피역, 전북 익산 춘포역, 부산 해운대 송정역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삐걱거리는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녹슨 철길위에 첫사랑이 앉아 있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쓸쓸한가? 간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