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에 가고 싶다
금요 수필
노을 지는 일중리 섬진강 변에서 남녀 한 쌍이 속삭이고 있다. 그곳에서는 연인들이 나누는 작은 웃음소리도 밀어가 되고 마주 보는 눈빛마저 언어가 된다. 바람도 갈대 사이로 드나들며 그들의 사연을 실어 나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서걱 갈대도 맞장구쳐준다. 가을날 청춘의 편린이 흩어져 강물은 온통 황금빛이다. 이렇듯 섬진강은 조급하게 흐르지 않으며 청춘들의 작은 속삭임마저 모른 척 보듬어주고 수풀과 바윗돌을 스치며 유유자적 흘러갈 뿐이다.
유장하게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흐르는 강물, 그 강물을 따라 가을도 흐르며 저물어 간다. 때로는 속삭이듯 잔잔한 서곡으로 때로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물길을 따라 뭇 생명의 생명수로, 강물에 기대어 사는 것들에 각각의 가을 색을 입히며 함께 흐른다. 물이 흐르는 듯, 가을이 흐르는 듯, 연인인 듯, 강물인 듯 그렇게 분주하게 속삭이면서.
강물의 걸음도 느려졌다. 사람들은 바로 위에 있는 섬진강 댐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안다. 강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밀어가 강물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을.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눈도 귀도 사로잡히거늘, 강물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나 또한, 그들을 통해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귀소본능처럼 가을이 풀어놓은 풍경에 기대어 추억을 더듬는다. 부모님 몰래 이고 지고 간 솥단지 태워 가며 지어먹던 고슬고슬 삼층밥, 다슬기 잡아 국 끓이고, 된장에 고추 하나만 찍어 먹어도 꿀맛이었던 천렵, 이 또한, 강물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구미정(九美亭)을 아득히 에돌아 흐르던 물소리, 바람 소리를 한 광주리 담아서 기억의 시렁에 올려놓고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한 조각씩 꺼내 봤으니까. 그날도 강의 걸음은 느렸고 바람은 숨죽이고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들어줬으니까. 참 달도 밝았었는데, 샛별은 또 얼마나 아득했던지, 작은 눈 속에 어떻게 큰 달이 들어갈 수 있냐며 서로를 놀리며 깔깔거리던 친구들이 목소리가 울컥 그리움으로 물결 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노을을 그들도 봤으면 좋겠고 내가 흘린 저 그리움의 물결도 그들이 먼저 윤슬로 만났으면 좋겠다.
언제부터인가, 덕지덕지 기억 속에 가둬둔 사진첩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추억이 하나둘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기억의 페달은 날마다 돌리지만, 고장 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사는 동안 세월은 꼬박꼬박 나이를 선물했고 나이는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놓더니 이제는 기억의 모서리에서 점점 지우려고 한다. 세월이 야속하다. 이런 날에는 강가에 한 번 찾아가 볼 일이다. 세월도 강물처럼 더디 흐를지도, 어쩌면 우리네 수다를 다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곳에 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강물은 여러 겹으로 우르르 몰려와 오선을 그리며 반길 것이고 바람은 두런두런 증언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기억이 쏜살같이 모이는 날도 있으리라. 그런 날은 함박꽃처럼 웃다가 분수처럼 솟다가 수척했던 시간을 바닥까지 가난해지기도 하지만, 괜찮다. 나를 다독인다. 어쨌든 저무는 어느 가을날, 우연히 강가에서 만난 연인의 모습에서 뜬금없이 꺼내 볼 추억이 있어서 좋다. 물론 저물어 간다는 것이 낡고 늙어가는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내 삶도 어느새 가을의 한 모퉁이 어디쯤 접어들었다는 의미라 이해하면 서러울 일도 아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든가.
살다가 아주 열심히 살다가 가끔은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빠르게 흐르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산다. 가끔은 멈춰서서 뒤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 강에 오면 된다. 강물은 휘어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고 얕아지기도 하며 쉬어가기도 한다. 나는 귓가에 수런수런 환청처럼 들리는 연인의 속삭임이, 강물에 누운 산그림자가 단풍처럼 물들 때면 그 후 연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연이 궁금해지면 다시 그 강가에 찾아갈 것 같다.
물론 강물은 수없이 많은 사연의 속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친 기억을 헹구며 애면글면 글썽거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결코 이유 없는 서러움이나 출처 없는 그리움을 강물 탓이니, 가을 덕분이니 핑계를 대지 않으리라.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일이다.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다는 김용택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빌린다. 그곳에는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 강이 있다. 그 강에 가고 싶다.
*구미정: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고향)에 있는 조선 숙종 때 지은 정자로 일대에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