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도시

2024-02-20     전주일보
김정기

우수(雨水). 봄비 내리는 시기다. 그제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였다. 모악산 버들강아지에도 하고 터질 듯 봄이 올라왔다. 남녘에서 매화로 시작한 봄이 손안에 파릇파릇하다. 하지만 전주 백제대로에 새로 꾸민 화단은 아직도 앙상한 겨울이다.

여기는 화단이 아니라 완전히 쓰레기통이네요.” “어디서 가져온 나무인지 참 어설프네. 이런 걸 심어놨으니.” “사람들이 별별 거 다 버렸네. 아주 더러워∼" 전주 근영여고 건너편 백제로 버스승강장. 시민들 원성이 자자하다.

전주 백제대로. 1981년 전주역에서 명주골 네거리까지, 85년 다시 명주골서 종합경기장 네거리까지 그리고 91년 백제교 개통, 이어서 평화동 꽃밭정이 네거리까지 8.6km의 왕복 8-10차로가 완성되었다. 전북 유일의 대로(大路). 이전까지만 해도 왕복 4차로의 팔달로가 전주 중심축을 가로지르는 간선도로였다. 이제는 전주의 중심축이 백제대로로 옮겨왔다.

전주시는 지난해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백제로 인도 블록을 걷어냈다. 명주골에서 꽃밭정이 네거리까지 줄지어 화단을 만들었다. 볏짚으로 차도와 인도를 가르고 작은 울타리를 쳐 이름 모를 나무를 마구 심었다. 깨진 돌도 명패도 군데군데 세웠다.

그렇지만 계획과는 달리 도심의 대형 쓰레기통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다가교에서 병무청 네거리에 이르는 충경로도 긴 공사로 오가는 시민들을 엄청 불편하게 하고 있다. 전수 조사·감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임 전주시장은 백제로가 시작되는 전주역-명주골 구간에 첫마중길을 만들었다. 노폭을 왕복 8차로에서 6차로로 줄였다. 도로 가운데에 널찍한 인도를 조성하고 공연과 책을 볼 수 있는 시설도 설치했다. 방문객들에게 전주를 문화도시·예술도시로 전하고자 했다. 걷는 이들에게 여유와 볼거리를 느끼게 했다. 반면에 많은 운전자들이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설치했다는 비난이다. 크게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이어지는 길 백제대로 끝, 평화동 꽃밭정이 네거리에서 중화산동 빙상경기장까지 걸었다. 대학교수 지인이 일갈한다.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네. 쓰레기통이여. 파석(破石)으로 화단을 채우고, 세워놓고.” “저 나무도 그루당 백원이나 갈까요.” “깨진 유리창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여기에서 여실히 보여주네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발표한 사회 무질서이론이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험 결과. 골목에 2대의 차량 보닛을 열어두고 한 대만 앞 유리창을 깨 일주일을 지켜봤다. 멀쩡한 차량은 그대로, 유리창이 깨져 있던 차량은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었다.

실제 1980년대 뉴욕에서는 치안 상태가 엉망이던 지하철에서 낙서를 지우고 깨끗이 관리하자 사건 사고가 급감하였다. 2012년 서울역 부근, 노숙인이 많았던 곳에 꽃거리를 조성하면서 깨끗한 거리가 만들어졌다.

전주 평화동에서 순창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 평화 네거리에서 구이에 이르는 전주시 구간 왕복 4차로. 길어깨가 온통 묵은 쓰레기천지다. 벌써 몇 년째다. “이 길은 시장이 한 번도 안 지나갔나요.” “어떻게 저런 쓰레기들이 방치돼있는 거죠?” “제가 사는 필라델피아 도로보다도 더럽네요.” 차량에 동승한 미국 교민 이야기다. 자동차 깨진 범퍼, 대형 쓰레기봉투 심지어 동물 사체까지 민망할 정도로 만물 시장이다.

전주에서 김제로, 정읍으로, 남원으로, 진안으로 나가는 도로에서. 심지어 익산·군산으로 향하는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묵은 쓰레기로 몸살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행정력과 우리 의식이 나락으로 추락했는지.

설 명절 전. 26. 전주시는 전주천과 삼천을 힐링 명소로 재창조한다는 7천억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홍수에 안전하고 전시와 공연,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명품 하천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홍수 방지 효과가 없고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는 프로젝트라며 즉각 취소하라고 반발했다.

여기에 전주시는 아중호수 관광 명소화, 대한방직 터 개발 그리고 종합경기장 컨벤션센터 건립 계획 등 벌여놓은 사업 부지기수다. 문화공간이다 놀이터다 시설물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보다 나은 양질의 삶이 담보되는 계획이어야 한다. 시민들이 자랑스러워야 한다.

A thing of Beauty/시선이 머무는 순간. 어떤 자동차 회사의 광고문구(copy). 깔끔하다. 멋지다. 그리고 타고 싶다.” 유혹한다. 광고면에는 회사 이름도 없다. 그래도 느낌으로 한껏 다가온다

시선이 가는 순간/A thing of Dirty. 전주 백제로 수십여 개 새 화단. 창피하다. 더럽다. 그리고 안 보고 싶다지금, 전주는 깨진 유리창 도시다.

 

#김정기(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오로지 전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